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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SK 농구, '그림자' 주장 이현준이 사는 법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2-11-22 07:40


남자농구 SK의 주장 이현준(왼쪽). 스포츠조선DB

남자농구 SK 나이츠 포워드 이현준(33)은 주장이다. 2001년 신세기 빅스를 통해 프로에 첫발을 디뎠다. 벌써 10년 이상 농구밥을 먹었다. 지금의 SK 유니폼을 입은 건 지난해 6월. 이번 2012~13시즌이 SK에서 두번째 시즌이다.

그는 지난 5월, 새 시즌을 준비하면서 '캡틴'이 됐다. 문경은 SK 감독이 주장은 무조건 이현준이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전 시즌 주장은 농구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베테랑 주희정이었다. 이현준은 주희정에 비하면 이름값이 크게 떨어졌다. 이번 시즌 경기 출전도 보장할 수 없었다. '명색이 주장인데 벤치워머일 경우 후배들이 잘 따라줄까'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문 감독은 "최고참 주희정을 홀가분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현준의 SK를 사랑하는 마음과 성실함을 보고 최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주장이 싫다고 했다. 신경쓸게 많았다. 그리고 경기에 좀더 많이 출전하고 싶었다. 이현준은 지난 4월 승무원인 아내와 결혼했다. 어느 시즌 보다 코트에서 더 많이 뛰는 모습을 와이프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주장이 됐고, 경기 출전 기회는 지난 시즌(39경기 출전) 보다 확 줄었다. 대신 SK는 중하위권에 머물거라는 예상을 깨고 줄곧 선두권을 유지하는 이변을 낳았다.

이현준은 이번 시즌 1경기, 그것도 7초를 뛴게 전부다.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모두 전무하다. 그렇다고 놀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경기가 벌어지는 코트가 아닌 곳에서 훨씬 많다.

문 감독은 주장에게 생각 보다 많은 책임과 권한을 주었다. 이현준에게 경기 출전 기회가 많지 않은 선수들끼리 별도의 훈련을 할 수 있게 시간을 할애해 주기도 한다. 이현준의 건의 사항을 거의 다 수용한다. 지난 4일 KGC전 승리 후에는 주장이 선수들에게 외박을 주자고 말하자 이현준의 책임하에 외박을 주기도 했다.

SK는 지난 10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딱 한번 올라갔다. 농구판에서 SK는 '빛 좋은 개살구' 취급을 받았다.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는 많았지만 모래알 조직력으로 악명이 높았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치욕적인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 SK가 조직력을 갖춘 팀으로 변하기 시작한 건 실전 코트 안이 아닌 밖이었다. 경기를 준비하면서 선수들끼리 대화가 많아졌다. 그 중심에 이현준이 있다. 그는 선후배들을 한 자리에 자주 모았다. 경기 끝나고 합숙소로 돌아가면 각자 방에 들어가 쉬기 바쁘다. 경기에서 진 후에는 서로 말하기 싫다. 하지만 주장은 선수들을 한데 모아 속내를 털어내도록 만들었다. 지난 13일 서울 라이벌 삼성에 어이없는 졸전으로 첫 2연패를 한 후에도 SK 선수 전원(외국인 선수 포함)이 모였다. 그래야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이현준의 애칭이 '우회(又會) 이현준 선생'이 됐다. 선수들에게 집합 통보를 할 때마다 후배들이 웃으면서 "또 모여"라고 말한 게 '우회'로 발전했다.

이현준은 "내가 농구를 잘 못하지만 10년 이상 이런 저런 수많은 선수들과 팀을 봐왔다. 위기 때 우왕좌왕하는 선수들을 잡아주고 선수들이 얘기하기 어려운 걸 감독님이나 코칭스태프에 말해주는게 내 역할이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에게 제일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코트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을텐데 남편은 거의 벤치를 지킨다. 그렇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이현준은 "선수라면 누구나 뛰고 싶다. 특히 이렇게 팀이 잘 나갈 때는 더욱 그렇다"면서 "하지만 나 말고도 못 뛰는 선수들이 많다. 나까지 불만을 얘기하면 팀이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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