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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로 한 시즌 '20승'을 올리고, 타자로 '50홈런'을 때릴 수 있을까.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선수가 말이다. 야구 만화에나 나올법한 스토리인데 워낙 비현실적이라 비웃음을 살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공상이 오타니 쇼헤이(30)와 포개지면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오타니가 하나마키히가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이도류'를 조건으로 2013년 니혼햄 파이터스에 입단했을 때, 메이저리그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슈퍼스타' 오타니를 머릿속에 그린 사람이 있었을까. 오타니는 지난 12년 간 현대 야구에서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열고, 상상의 영역을 현실로 끌어왔다.
니혼햄 시절에 오타니의 '이도류'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구리야마 히데키 전 감독은 "야구 센스가 탁월하고 발이 빨랐지만 저렇게 도루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에 있을 땐 부상이 걱정돼 도루를 만류하는 입장이었다. 앞으로 '60-60'까지 노려봤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다른 차원에서 살았던 '야구 천재'는 또 다른 '야구 괴물'을 알아봤다. '50-50' 달성과 함께 오타니가 동경했던 스즈키 이치로(51)가 소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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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과한 립서비스로 들렸다. 좋게 봐도 후배를 위한 덕담같았다.
2018년 LA 에인절스로 이적한 오타니는 '이도류'로 주목받으며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에 올랐다.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에 투수로 10경기에 나가 51⅔이닝-4승2패-평균자책점 3.31, 타자로 104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8푼5리-93안타-22홈런-61타점-OPS 0.925를 기록했다.
대단한 성과임이 분명하지만 한 시즌 20승, 50홈런으로 연결시키는 건 무리한 상상같았다. 투타 겸업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대다수 일본의 레전드급 야구인들이 "투수와 타자 중 한쪽에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다"라고 충고했다. 체력 부담, 부상 위험을 걱정했다. '이도류'를 시도하더라도 어느 시점에서 한쪽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타자로서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그러나 이치로는 달랐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첫 시즌을 마친 오타니를 더 깊게 들여다봤다. 6년 만에 이치로의 예상이 실현된 셈이다. 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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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받은 오타니는 이번 시즌엔 지명타자로만 출전 중이다. 부상 재활이 끝나는 내년에는 '이도류'로 복귀한다. 이치로가 입에 올린 '20승-사이영상 수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2022년 15승(9패·평균자책점 2.33)이 오타니가 올린 한 시즌 최다승이다. 지난 시즌엔 23경기 등판해 10승(5패·3.14)을 기록했다.
이치로와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서 함께 뛴 건 2018년 한 시즌뿐이다. 2018년 마이애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한 이치로는 마지막 시즌에 15경기에 나갔다. 시애틀과 LA 에인절스는 같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소속이다.
오타니에게 이치로는 동경했던 대선배를 넘어 '스승'같은 존재다. 일본의 스포츠전문지 스포츠닛폰은 오타니가 니혼햄 소속으로 뛸 때부터 이치로와 여러 차례 식사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치로는 당시에도 오타니의 타격 재능을 높게 평가했다.
오타니는 2018년 메이저리그 데뷔를 앞두고 이치로의 집을 찾아가 타격에 관한 조언을 들었다. 대기록 달성에 이치로가 어떤 식으로든 기여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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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7년 연속 타격 1위를 한 이치로는 2001년 시애틀로 이적해 타율 3할5푼-242안타-56도루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첫해 신인왕과 아메리칸리그 MVP를 동시에 수상했다. 오타니가 7살 때 일이다.
이치로는 2001년부터 10년 연속 '타율 3할-200안타'를 올렸다. 2004년 262안타를 때려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웠다. 오타니에 앞서 이치로가 야구 만화 캐릭터였다.
오타니는 20일 개인 SNS 계정에 50번째 홈런 동영상과 함께 영어로 '야구팬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한편, 스포츠전문지 스포츠닛폰 등 일본 매체들은 이날 호외를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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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