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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5분의 긴 승부. 이학주가 끝냈다. 4-4, 죽음같은 연장행렬이 이어지던 11회 말 1사 2루에서 한현의의 6구째 패스트볼을 통타해 중견수 키를 넘겼다. 한국 무대 데뷔 첫 끝내기 안타.
이학주를 대체한 선수가 바로 6년차 내야수 박계범이었다. 손주인 대신 이날 막 엔트리에 등록된 선수. 9번 유격수로 선발 출전한 박계범은 꽤 관심을 끄는 선수였다. 경기 전 삼성 김한수 감독은 "2군에서 잘하고 있길래 불렀다"고 콜업과 출전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박계범은 포항 2연패로 무겁게 가라앉은 선수단의 분위기 전환용 카드였다.
기대 이상이었다. 2회 첫 타석은 박계범의 프로 데뷔 첫 타석이었다.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0-0으로 팽팽하던 2회 러프의 안타와 최영진의 2루타, 김동엽의 볼넷으로 2사만루. 부담되고 긴장되는 상황이었지만 박계범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흘렀다. 씩씩했다. 거침 없이 초구부터 배트를 시원하게 돌렸다. 볼카운트 1B2S. 6구째 145㎞짜리 투심패스트볼에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빗맞은 타구, 하지만 운 좋게도 우익선상에 절묘한 위치에 떨어졌다. 행운의 적시 2루타. 야무지게 주눅들지 않고 돌린 스윙과 유인구 커트가 결과적으로 행운의 안타로 이어졌다.
"시합 전 많이 긴장했는데 만루라는 기회가 오니 오히려 더 긴장 풀렸던 것 같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거 하자는 생각에 모 아니면 도 하자는 마음을 먹었고, 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트를 따라가는 게 맞길래 타구를 안으로만 넣자고 생각했습니다."
쉽지 않은 마인드다. 실제 그는 첫 타석 행운의 안타가 전부는 아니었다. 퓨처스리그 4할 타자 답게 7,9회 안타 2개를 더 보태 타격 데뷔전에 3안타 경기를 완성했다.
타격 데뷔전이 영웅 탄생의 무대가 될 뻔했다. 4-4 팽팽하던 10회 2사 만루에 또 찬스가 걸렸다. 풀카운트에서 잘 밀어친 타구가 얕은 끝내기 안타에 대비하기 위해 전진수비 하던 우익수에 걸렸다.
"안타 하나만 치면 다한 거라 생각했는데 3개를 쳤네요. 형들과 코치님들이 옆에서 찬스 계속 올거니까 오늘은 네가 영웅하라고 해주셨는데 아까운 마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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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봤을 때 제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사실 기대한 모습이 나오지 않아 정말 죄송스러웠습니다. 많은 걸 보여주기 보다 조금씩 천천히 보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박계범의 등장으로 삼성 유격수에는 예기치 못한 경쟁구도가 생길 판이다.
이학주는 후배의 깜짝 활약에 진심으로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작년 마무리 캠프 때부터 같이 유격수 훈련을 했습니다. 야구를 잘하는 선수고, 후배지만 저보다 더 나은 모습입니다. 1군 선수 못지 않은 여유 있는 플레이를 보고 놀랐고요. 좋은 내야수가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제가 더 악착같이 해야 할거 같고, 그게 프로의 세계인 것 같아요. 잘하면 나가는 거고, 그냥 잘해서 좋고요. 팀이 이겨서 더 좋습니다."
박계범의 깜짝 등장은 삼성 내야진의 분위기를 확 바꿔놓지 모른다. 훌륭한 유격수 백업 발굴이자 경쟁 속에 서로 성장 에너지를 주고받는 '시너지'가 야수진 사이에 확산될 수 있다.
그동안 낯 선 국내 무대 연착륙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 속에 마음고생을 한 이학주. 마음 같지 않은 상황 속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꾹꾹 눌러놓은 답답했던 마음이 이번 끝내기 안타로 잠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 상황에서 울컥했다.
지금의 시련은 한국 최고의 유격수를 향해 가는 과정의 일부다. 스스로도 많은 것을 돌아볼 계기가 됐던 포항 키움전이었다.
"캠프 때 언젠가 기회가 올 거 같아서 제가 할거만 하자고 준비해다"던 성실파 박계범의 1군 입성. 이학주의 끈을 바짝 매도록 해주는 좋은 자극제가 될 전망이다.
포항=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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