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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명장(名將)'이 현장을 떠났다.
선수와 지도자로 두산에서 김 감독과 함께 했던 신경식 코치는 "나한테는 인자하고 좋은 기억 밖에 없다. 그러나 강할 때는 강한 모습을 보이셨다. 이번에도 그런 과정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선수들한테는 인자하더라도 본인이 아니라고 판단할 때는 단호하시다"면서 "두산 때도 혼자 결정하고 그렇게 하셨다. 그 외적인 부분은 상의를 많이 했고, 모난 부분은 없으니까. 팀에서든, 대표팀에서든 그 분과 함께 했던 코치 중 욕하는 사람은 못봤다"며 아쉬워했다.
프로야구의 재미 가운데 하나는 스타일이 각기 다른 감독 간의 지략 싸움이다. 스몰볼과 작전야구를 선호하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선수들에게 맡기는 선굵은 야구를 표방하는 감독도 있다. 팬들에게 자주 얼굴을 노출하는 홍보형 감독이 있는가 하면, 더그아웃에 앉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감독도 있다. 다혈질의 승부욕 넘치는 감독, 조용히 선수를 불러 타이르는 감독, 화를 못이겨 더그아웃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감독,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다 밤새 홀로 술잔에 고독을 푸는 감독. 프로야구 37년 역사 속에는 다양한 유형의 감독들이 전쟁같은 승부를 끊임없이 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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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는 스타일과 나이, 출신, 경력 등에서 여러 유형의 감독들이 공존해야 재미가 더해진다. 40대 젊은 감독이 갖지 못한 지혜와 노련미를 60대 베테랑 감독은 가지고 있다. 베테랑 감독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신선한 야구를 젊은 감독은 과감하게 꺼내들 수 있는 것이다. 신구의 대결은 언제나 재밌다. 2009년 한국시리즈가 생각난다.
당시 SK 김성근 감독과 KIA 조범현 감독은 사제지간으로 관심을 모았다. 1970년대 충암고에서 감독과 선수로 인연을 맺은 두 사령탑은 7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벌이며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를 연출했다. 둘 다 데이터 야구를 바탕으로 했지만 각론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선발야구'에 '감'을 더한 조 감독이 7차전 위기 속에서 선발요원인 아킬리노 로페즈를 구원투입하고,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을 앞세워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지금까지 프로야구 감독 직함(대행 포함)을 가졌던 야구인은 총 76명이다. 이 가운데 10년 이상 지휘봉을 잡은 이는 강병철 김경문 김성근 김영덕 김응용 김인식 김재박 이광환 조범현 등 9명에 불과하다. 이들의 '롱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김경문 감독이 향후 다시 현장 지휘봉을 잡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적어도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여전히 다수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에 어둠을 들여다볼 줄 알던 사령탑이었다. 그라운드에서는 승부욕을 뜨겁게 불태웠고, 뚝심과 믿음의 야구를 표방했다. 김 감독이 여러 선후배 사령탑들과 함께 짜 나아간 페넌트레이스는 언제나 흥미로웠다.
똑같은 야구를 하는 것이지만, 감독들의 지휘 방식은 그라운드에서 다양하게 표출돼야 한다. 프리즘을 통과한 각양각색의 '스펙트럼'이 아름다운 이유다. 스펙트럼의 한 줄기가 사라져 아쉬움이 크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