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는 2006년 2차 8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할 때부터 이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폼으로 데뷔 3, 4년차인 2008~2009시즌에 2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달성했다. 김태완의 첫 번째 전성시대였다. 2년간 그가 기록한 46개의 홈런은 같은 기간 리그 전체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이대호(롯데)와 동률이었다. 지금 홈런으로 리그를 대표하는 최 정(SK)이나 최형우(당시 삼성) 나지완(KIA) 등을 멀리 따돌렸던 시기다.
특히 이 기간의 김태완은 홈런으로만 이름을 날린 타자는 아니었다. 평균 타율은 높지 않았지만, 선구안이 좋아 볼넷도 많이 골라나갔다. 2년간 총 122개의 볼넷을 얻어냈는데 이는 같은 기간 KBO리그 전체 5위에 해당한다. 동 시대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였던 이대호(롯데) 양준혁 박한이(삼성) 박재홍 정근우(이상 SK) 김태균 이범호(한화) 보다 많았다. 덕분에 같은 기간 출루율도 리그 전체 11위였다. 어떤 이들은 "엉망진창이다"라는 혹평을 서슴지 않았던 그 독특한 타격 폼으로 만든 결과였다.
당시 김태완은 '실험체'였다. 어제와 오늘의 지시가 달랐고, 감독과 코치의 말이 엇갈렸다. 김태완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가르쳐 준 폼이 아닌 예전의 모습이 나오면 출전 기회마저 얻지 못했다. 그러면서 김태완은 본연의 장점까지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선구안과 장타력을 겸비하는 리그의 간판타자로 발돋움하려던 김태완이 순식간에 'B급 선수'로 전락하게 된 이유다. 묘하게도 김태완의 퇴보는 한화의 몰락과 시기가 겹친다. 결국 김태완은 2013년 이후 1, 2군을 전전하다가 2016년 말 웨이버 공시를 끝으로 한화와의 인연을 마쳤다. 그의 야구인생도 이렇게 저무는 듯 했다.
하지만 그때 넥센 히어로즈가 손을 내밀었다. 새로 만난 넥센 코칭스태프는 김태완의 타격 자세를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다름'을 그냥 인정했다. 고개를 숙였던 김태완의 배트 헤드는 다시 투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한없이 작아졌던 자존감이 살아나면서 10년 전의 날카로움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
김태완은 24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개막전에 3번타자로 나섰다. 5년만의 개막전 선발 라인업 복귀였다. 그리고 개막전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 1볼넷으로 세 번이나 출루했다. 그는 "한번만이라도 내가 가장 편한 자세로 공을 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지금은 다행히 코칭스태프가 믿어주셔서 편안하게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면서 "개막전 선발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다"고 맹타의 원동력을 밝혔다. 데뷔 13년차의 김태완이 새로운 전성시대를 열 수 있을 지 기대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