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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한국시리즈가 막을 내렸다. 잠실구장 반을 채운 KIA 타이거즈 팬들, 김기태 감독의 눈물, 손에 땀을 쥐게 했던 5차전, 양현종의 깜짝 세이브. '가을의 전설'다운 명승부. 스포트라이트는 한국시리즈 MVP 양현종에게 쏟아졌다.
사실 양현종과 버나디나의 운명은 9회에 바뀌었다. 시상식 준비와 기사 마감 등을 이유로 MVP 투표 용지는 승부에 지장이 없을 경우 최종전 8회 전후로 배포되고 수거된다. 7회초까지 KIA가 두산 베어스에 7-0으로 앞섰으니 투표를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때까지는 기자단 사이에선 버나디나의 MVP 수상이 유력했다. 5경기에서 19타수 10안타(0.526)에 1홈런 7타점, 2차례 결승타. 양현종이 2차전 완봉승으로 시리즈 흐름을 돌려놨지만 1경기만으론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실제로 6회말 기자실에서 직접 만난 예닐곱명의 고참급 기자들에게 MVP를 물으니 예외없이 '버나디나'라는 답변이 나왔다.
하지만 KIA가 두산에 쫓기고, 양현종이 불펜에서 몸을 풀면서 투표용지 수거시점은 전격 늦춰졌다. 경기 결과를 끝까지 보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결과는 양현종의 세이브. 대단한 임팩트였다. 그 순간 MVP 용지에 버나디나에서 양현종으로 이름을 바꾼 기자들이 적잖았다.
버나디나는 8년전 KIA 외국인 투수 아킬리노 로페즈를 떠올리며 위안을 삼아야할 것 같다. 로페즈는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8이닝 3실점 선발승, 5차전 4안타 완봉승, 7차전 8회말 1사 2루 상황에서 두타자 완벽처리로 맹활약했다. 누가봐도 MVP급 활약. 하지만 7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친 나지완이 결국 MVP가 됐다. 나지완은 20타수 5안타(0.250) 2홈런 4타점을 기록했는데 2홈런 3타점은 7차전에서의 기록이었다.
투표 결과는 61표 중 나지완이 41표, 로페즈가 18표. 화가 난 로페즈는 우승 세리머니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 사이 세월이 흘렀고, 기자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지금 다시 투표한다면 아마도 MVP는 로페즈가 아니었을까. 그때만해도 용병보다는 국내선수가 더 주목받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로페즈도 '이분'에 비하면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1984년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롯데 최동원은 한국시리즈에서 전무후무할 4승을 혼자 책임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4승 외에도 완투패 한번이 더 있었다는 사실. 하지만 한국시리즈 MVP 주인공은 최동원이 아니었다. 7차전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스리런홈런을 때린 유두열이 MVP에 뽑혔다. 한국시리즈 7차전이 끝난뒤 투표가 이뤄졌고, 그해 27승을 거둔 최동원은 정규시즌 MVP가 됐고, 한국시리즈 MVP는 유두열의 몫이 됐다. 유두열은 21타수 3안타(0.143) 1홈런 3타점이 전부다. 역대 한국시리즈 MVP 최저타율. 두번째 낮은 타율 MVP는 나지완이었다. 당시 기자단 사이에서 나름 조정한 결과라는 얘기가 나왔다. 조정할 것이 따로 있지.
지금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 악플이 온 나라를 덮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최동원의 역사적인 투혼도, 혹사도, 기자들의 무식하고 무책임한 투표도 다 묻히던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허술했던 프로야구 초창기. KBO리그 불멸의 기록 중 하나로 꼽히는 한국시리즈 4승(1패)에도 시리즈 MVP가 되지 못했으니 말이다. 스포츠1팀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