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송구홍 단장 인터뷰]① "KIA와 한국시리즈서 맞붙고 싶다"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12-29 18:48


LG 트윈스 송구홍 단장이 유광점퍼를 입고 잠실구장 그라운드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6.12.27/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 코치, 운영팀 프런트를 거쳐 단장이 됐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 단장이 주목받는 시대가 됐다고 해도, 눈에 띄는 행보, 파격적인 결정이다.

송구홍 LG 트윈스 단장(48). 1991년 트윈스에 입단해 은퇴 후 운영팀 현장직원으로 시작해 코치, 운영팀장, 운영총괄을 지냈다. 지난 26년간 해태 타이거즈,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로 뛴 2년을 빼곤 줄곧 LG를 지켰다. 20여 년간 LG 최전성기를 경험했고, 혹독한 암흑기를 지켜본 뼛속까지 'LG맨'이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후 LG는 10년간 포스트 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풍족한 자원, 넉넉한 지원, 열성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는 열정은 없고 폼만 잡는 '부잣집 도련님'같다고 했다. 그랬던 트윈스가 최근 4년간 3차례 가을야구를 했다. 리빌딩을 통해 젊은 전력을 키우더니, 이번 겨울 95억원을 투입해 FA(자유계약선수) 좌완 투수 차우찬을 영입했다. 어두운 기운을 몰아내고 대약진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LG는 40대 젊은 단장 송구홍을 선택했다.

송 단장은 "프런트가 된 후 한 번도 온전히 하루를 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의욕이 넘치고 열정이 충만해 있다. 그는 KBO리그를 선도했던 1990년대 LG의 시스템 야구, 신바람 야구를 끊임없이 얘기했다. 그렇다고 과거에 갖혀있는, 향수에 빠져있는 리더가 아니다. 2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송 단장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는데, 암흑기 때 LG는 팀보다 선수가 위대했다. 자기 욕심 챙기는 선수, 몸 사리는 선수, 동료와 팬을 생각 안 하는 선수는 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팀에 도움이 된다면 창피할 게 없다. 우리보다 시스템이 잘 돼 있는 두산 베어스를 벤치마킹하겠다"고 했다.

"내가 없는 게 팀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프로 입단 2년 차였던 1992년 '20-20'을 달성하고 3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화려한 시절이 있었고 좌절도 경험했다. 선수 시절 진짜 꿈이 무엇이었나.

선수 때는 막연하게, 은퇴하면 지도자 해야지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훌륭한 리더 모시고, 참모가 되는 게 꿈이다. 구단 프런트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행정적인 것은 너무 어렵고, 적성에도 안 맞는다. 사실 수학 같은 거 하기 싫어 야구를 시작했다.(웃음) 앉아서 하는 일보다 동적인 걸 좋아했다. 1991년 입단했는데, 당시 LG는 1990년 우승 후 과도기, 준비의 시기였다. 입단하자마자 3루를 맡았다. 이광은 선배가 은퇴하고 구단에서 그 자리를 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팀 리빌딩의 일환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 LG 전성기의 주역이었는데, 그때 야구장과 지금 분위기가 다른가.

비슷하다. 지난 번 KIA와 맞붙은 와일드카드 결정전, 한국시리즈 분위기 아니었나. 예전에도 해태랑 LG가 붙으면 최고였다. 이번에 그때 분위기를 느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땐 우황청심환 먹고 경기 봤다. 우리 팀이나 KIA 젊은 선수들이 엄청난 경험을 했다. 앞으로 자산이 될 것이다. 만약 LG, KIA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다면? 엄청날 것이다.

-LG에서 시작해 해태로 트레이드 됐을 때 충격이 컸을 것 같다.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지고 트레이드 됐는데, 굉장히 서운하더라. 트레이드는 정말 생각 못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감정이 북받쳤다. 그래도 다시 돌아올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구단에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런데 생갭다 빨리, 2년 만에 복귀했다. 이래서 좋은 마무리가 중요하다.(웃음) 해태가 명문팀 아닌가. 9번 우승한 팀에서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갔다. 그때 해태에서 진짜 많은 걸 배웠다.(송 단장은 1999년 쌍방을 거쳐 LG로 돌아왔다)

-유망주가 LG를 떠나면 잠재력이 터진다는 '탈지 효과'가 회자됐다. 왜 그런건가.

시스템이 붕괴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면 안된다. 내가 자리에 연연하거나 욕심을 냈다면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순간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장수하겠다는 생각하는 순간 끝난다. 팀은 중장기 비전을 갖고 가야 하고, 개인으로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
LG 트윈스 송구홍 단장.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6.12.27/
다.

-현장과 프런트의 경계가 많이 무너졌다. 선수 출신 단장이 주목받고 있는데, 김태룡 두산 단장과 민경삼 전 SK 단장 덕을 본 게 아닌가.

그분들 덕을 봤다. 역할을 잘 수행하셨기에 내게 기회가 생겼다고 본다. 운영팀장 하면서 벤치마킹을 한 부분이 있다. 팀을 새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게 있으면 받아들여야 한다. 예전부터 많이 물어봤다. 나는 경청해 좋은 건 받아들이면서 확률 높은 쪽으로 만들어가는 스타일이다.

-단장이 됐을 때 김태룡 단장이 어떤 말을 하던가.

소신껏 해라, 잘 할 거라고 하셨다. 또 크게 다를 게 없으니, 팀 생각하고 냉정하게 판단하라는 얘기도 들었다. 프런트를 해보니 선수, 코치 때와 다른 세계가 보였다. 만약 현장으로 돌아간다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KBO리그의 단장 역할이 다르다. 최근 몇 년간 프런트 중심 야구로 흘러가는 것 같다. 프런트 야구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현장에서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프런트 야구하면 '월권' '간섭'을 떠올리는데, 수직적인 관계를 생각해서 그런 거다. 프런트 야구라는 말이 현장에선 귀에 거슬릴 수 있다. 감독, 단장이 누가 위다 아래다 없이 수평적 관계가 돼야 한다. 그래야 '월권', '간섭' 이런 단어가 사라진다. 프런트 야구를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시스템 야구다.

-시스템 야구란 현장, 프런트가 짜여진 틀에서 움직이는 걸 의미하는 건가.

스카우트, 육성, FA 영입, 트레이드, 데이터 분석 등 각 분야가 시스템의 틀에서 작동하는 걸 말한다.

-외국인 선수 선발 등 현장과 프런트가 협업 하겠지만, 누군가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

어느 한쪽에 전권을 주는 팀이 있지만, 수평적 관계에서 진행해야 한다. 감독도 양보할 게 있으면 하고, 구단도 팀을 위해 해야 한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팀이 우선이다. 팀만 생각한다면 감독, 단장, 이런 직위에 상관없이 좋은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변화가 예상되는데, LG가 추구해야 할 야구를 설명한다면.

'원칙과 기준'을 만들고 싶다. 예를 들자면, 죽기 살기로 하는 선수, 절박한 선수, 팬을 생각하는 선수, 동료를 생각하는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 자기 욕심 챙기는 선수, 몸 사리는 선수, 동료와 팬을 생각 안 하는 선수는 걸러내야 한다. 이런 원칙과 기준을 확실하게 만드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프로축구 FC 서울의 구리 훈련장에 가면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볼 때마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암흑기 때 LG는 팀보다 선수가 위대했다. 단체 스포츠에서 선수는 팀에 맞춰야 한다. 팀이 슈퍼스타, 특정 선수에 맞춰주면 안 된다. 올해 이런 부분이 조금 정리가 됐다. 가슴이 뜨거운 LG가 됐으면 좋겠다.

-냉정하게 봤을 때, 선수 출신 단장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선수 출신이라고 다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비선수 출신 단장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 다만, 선수 출신은 현장 감각이 있다는 게 장점 아닐까. 구단에서 선수 11년, 코치 10년, 프런트 생활 4년을 좋게 평가해주셔서 이 자리까지 왔다. 얼마 전 구단 조직이 개편돼 단장은 운영 쪽에 전념한다. 두산과 SK를 벤치마킹했다. 현장 출신으로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팀을 위해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겠다. 현장을 많이 아는 게 장점이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현명하게 처신하겠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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