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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으로 '대박' 김경언 "동기 김태균-정근우 보면서 창피했다"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9-03 10:27


8월12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전 8회초 한화 김경언이 1타점 2루타를 치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올해 한화 이글스에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할 선수가 적지 않다. 중독성 강한 한화 야구의 주역 중 프로 15년차 외야수 김경언(33)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경남상고를 졸업하고 2001년 해태 타이거즈에 2차 2라운드로 지명된 김경언은 지난해까지 확실한 자리가 없었다. 지난 14년간 한 번도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타이거즈 때도 그랬고, 이글스로 이적한 후에도 '필수 요원'이 아닌 '있는 듯 없는 듯한' 선수였다. 지난 2010년 6월에 3대3 트레이드를 통해 장성호 이동현과 함께 KIA에서 한화로 이적했다. 그 때도 거래의 중심에는 장성호 이동현이 있었다.

백업 선수다보니 FA(자유계약선수) 자격도 14년 만에 얻어냈다. 일찌감치 한화 잔류로 마음을 굳힌 김경언은 FA인데도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에 참가했다. 한화에 뿌리를 내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김성근 감독 밑에서 제대로 야구를 해보고 싶었다.

어렵게 FA가 됐지만 당연히 대박은 없었다. 원소속 구단과의 협상 마감일인 지난해 11월 26일 3년-총액 8억5000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계약금 3억원, 첫 해 연봉 1억5000만원, 2~3년차에 2억원을 받기로 했다. 최 정(4년 86억원), 김강민(4년 56억원·이상 SK)과 비교가 안 되는 계약 조건이었다. 실력이 바로 돈으로 환산되는, 그게 프로이고 현실이다. 김경언은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내가 보여준 게 정말 너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28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릴 2015 프로야구 한화와 두산의 경기에 앞서 스트레칭을 끝낸 한화 김경언이 두산 강석천 코치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7.28.
그런데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2일 현재 83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6푼3리(295타수 107안타), 14홈런, 66타점, 출루율 4할3푼5리, 장타율 5할6푼3리. '촌놈 마라톤' 정도로 알던 야구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15년차 외야수 김경언은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타율과 안타, 홈런, 타점 모두 개인 최고 기록이다. '저비용 고효율'하면 바로 떠오르는 얼굴이 됐다.

지난해처럼 올해도 33인치짜리 배트를 쓰고 있다. 무게도 똑같다. 물론,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까지 배트를 짧게 잡고 투수가 던진 공을 맞힌다는 기분으로 휘둘렀는데, 올해는 방망이를 길게 잡고 자신있게 '돌린다'고 했다. 생존을 위한 소심한 타격이 공격적인 배팅으로 바뀌었다. 김경언은 "방망이를 완전하게 돌리면서 삼진은 늘었으나 장타가 많아졌다"고 했다. 타격 밸런스, 몸의 중심이 잡히면서 정확도도 높아졌다.

프로 초기 타이거즈 코칭스태프, 선배들은 그를 '산만이'로 불렸다. 야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다'고 해서 붙여진 달갑지 않은 별명이었다. 그런데 올해 한화팬들은 그를 '갓경언'으로 부른다. 야구의 '신(갓·god)'처럼 존재감이 크다고 해서 '갓경언'이다.

돌아보면 평범했던 야구선수 김경언에게 두 차례 전환의 계기가 있었다. 2011년 12월 가정을 꾸렸고, 지난해 말 FA 계약이 그랬다. 결혼 후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김경언은 아내 엄수원씨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며 고마워 했다.


2015 KBO리그 한화이글스와 롯데자이언츠의 경기가 8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렸다. 한화 8회말 1사 1루에서 김경언이 역전 투런홈런을 치고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대전=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5.08.08/

"예전에는 안타를 때리면 좋고, 못 치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야구가 내 직업인데도 그랬다. 결혼을 하고, 첫째 권률이가 태어나고, 특히 지난해 둘째 동률이가 세상에 나온 뒤 야구에 대한 절실함이 생겼다." 두 아이가 아빠에게 강력한 힘을 불어 넣어 준 셈이다.

현재 한화의 간판 타자인 김태균와 정근우는 김경언과 1982년생 동갑내기 친구다. 내색한 적은 없지만, 잘 나가는 동기생들의 존재가 큰 자극이 됐다.

"동기들이 많은 연봉을 받고, FA 대박을 터트리고 우리 팀에 왔을 때 솔직히 내 자신에게 창피했다.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야구를 더 열심히,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글스의 주축 타자가 되면서 기분 좋은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까지 김경언 이름 석자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을 찾는 팬이 거의 없었는데, 올해는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타석에 섰을 때 쏟아지는 팬들의 응원 함성. 엔돌핀을 팍팍 돌게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안타를 때리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불어넣는다.

2일 현재 김경언은 규정타석 미달이다. 지난 5월 KIA 타이거즈 투수 임준혁이 던진 공에 오른쪽 종아리를 맞았다. 부상으로 40일 넘게 출전하지 못한 게 컸다. 규정타석 달성 가능성은 남아있다. 남은 경기에 풀타임 출전하면 데뷔 후 처음으로 규정타석을 채울 수 있다. 물론, 팀 사정이 문제
2015 KBO리그 한화이글스와 롯데자이언츠의 경기가 8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렸다. 롯데 8회말 2사 1루에서 김경언이 역전 투런홈런을 치고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대전=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5.08.08/
다. 선발로 나선다고 해도 경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대수비, 대주자로 교체될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시즌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과 첫 규정타석 진입이다. 두 가지 모두 의미가 크다. 타이거즈 시절인 2004년 이후 김경언은 한 번도 가울야구를 하지 못했다. KIA 소속이던 2009년에 팀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지만 당시 김경언은 1군에서 뛰지 못했다. 2,3군에서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광주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대전에서 조금 늦게 꽃을 피웠다. 프로 15년차 김경언은 기회를 열어준 이글스가 고맙다고 했다.

한화팬들이 목청껏 부르는 응원가처럼 올해 김경언은 "나는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전=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한화 김경언 연도별 성적

연도=소속팀=경기수=타율=안타=홈런=타점=득점

2001=해태-KIA=65=0.287=27=1=7=15

2002=KIA=107=0.263=72=1=33=45

2003=KIA=125=0.258=85=4=46=36

2004=KIA=114=0.243=46=3=25=20

2005=KIA=78=0.271=51=5=19=23

2006=KIA=73=0.180=18=-=8=14

2008=KIA=8=0.200=4=-=2=-

2009=KIA=2=0.500=1=-=4-=1

2010=한화=50=0.253=40=-=11=19

2011=한화=81=0.243=42=2=15=22

2012=한화=110=0.243=6=4=31=25

2013=한화=70=0.276=59=1=24=24

2014=한화=89=0.359=94=8=52=43

2015=한화=83=0.363=107=14=66=43

※올해 기록은 9월 2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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