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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을 보지 마라."
하지만 두산 마무리 이현승(33)은 다르다. 투구판에서 잠시 몸을 돌려 전광판을 응시하는 편이다. 코칭스태프의 주문을 어기는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 다른 투수들처럼 스피드를 체크하는 게 아니다. 원래 야구나 인생이나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고 믿는 그다. 올 시즌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 문구도 같은 맥락이다. "투수에게 필요한 첫 번째 덕목은 결국 제구다"라고.
정작 전광판에서 그가 유심히 지켜보는 건 상대 타자의 이름이다. 위기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는 "투구판을 밟기 전, 공을 던지기 전 타자의 '이름'을 보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17일 말했다. 일종의 이미지트레이닝인 셈인데, "'무조건 잡을 수 있다. 내가 이긴다'는 신념이 중요한 것 같다. 나도 떨리고 저쪽도 떨릴 때,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는 쪽이 이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만루는 아니었지만, 15일 인천 SK전에서도 이현승의 배짱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5-4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리드. 8회부터 등판한 그는 9회 안타 2개와 내야 땅볼로 1사 1,3루 위기를 맞았다. 타석에는 LG에서 트레이드 된 정의윤. 이현승은 2구 만에 투수 앞 땅볼로 아웃 카운트를 늘렸다. 후속 타자는 이재원. 올해 1,3루에서 4할2푼9리의 맹타를 휘두른 거포였다. 하지만 이현승이 이겼다. 볼카운트 1B-2S에서 몸쪽 승부를 연거푸 펼치더니 결국 몸쪽 직구로 스탠딩 삼진 처리했다.
당시 김태형 감독은 이재원을 거를까 잠시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현승과 양의지 배터리에게 판단을 맡겼는데 역시나 평소 성격답게 바로 승부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이)현승이가 몸쪽 승부를 적극적으로 하더라. 이재원도 몸쪽 공을 노리고 있었지만 점점 더 깊숙이 파고 들었다"며 "통상 마무리 투수가 몸쪽 승부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한데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크다. 그런 면에서 이현승은 남다른 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를 두고 '기가 센 투수'라는 표현을 썼다. "최악의 경우, 이재원에게 한 방 맞았어도 벤치에서는 뭐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현승이는 마운드에 서자마자 자기가 갖고 있는 베스트 공을 뿌리니 타자를 이길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그는 "중요한 것은 결국 '기'다. 특히나 불펜 투수들은 기에서 밀리면 끝이다"며 "그런 모습을 갖고 있는 마무리 투수의 공은 결코 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현승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는 "투수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한 두 번 위기를 틀어막으면 그 잔상이 남아 다른 경기에서도 잘 던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광판을 보면서 다음 타자가 누구인지, 그래서 지금 이 타자와 어떻게 승부해야 하는지 등 나름의 계산을 한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며 "나 때문에 다 잡은 승리를 놓칠 수 없지 않는가. 순위 싸움이 한 창인데 공 한 개 한 개에 목숨을 걸고 던지려 한다"고 밝혔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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