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세계에서 지고 속편한 사람 없다. 더구나 정황상 자존심이 상할 법한 장면도 있었다. 23일 밤, 수원 케이티 위즈파크에서 한화 이글스에 1대6으로 패한 뒤 신명철(37)은 그래서 분노했다. 그럴 수 있다.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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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중 앞에서 이미 끝난 승부에 대해 욕설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건 무례한 행동이다. 신명철의 의도는 달랐겠지만, 사실상 그의 행동은 케이티 위즈구장의 전 관중, 그리고 주말 저녁 TV 중계를 통해 야구를 지켜보던 모든 야구팬을 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정한 프로라면, 그리고 한 팀의 주장이라면. 신생팀에 대한 애정 하나로 그 시간까지 응원해 준 팬에 대한 인사를 먼저 하는 게 순서다. '열심히 싸웠지만, 져서 미안했다'고, '다음번엔 경기에서는 반드시 이 아쉬움을 되갚겠노라'고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이는 게 먼저다. 경기에 지고 속이 상해 펑펑 울면서도 응원단석을 찾아가 고개숙여 인사하는 고교 야구선수들의 모습이 훨씬 프로답다.
하지만 이 또한 석연치 않다. 올시즌 프로야구에서 '5점 차이'는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 게다가 한화는 kt에 위닝시리즈를 내준 바 있다. 또 kt는 한화전에서 팀 타율이 가장 높다. 3할을 넘는다. 때문에 한화는 '부담스러운 상대'인 kt를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강경학의 도루는 세련되지 못했다. 그러나 신인의 열정으로 보면 이해못할 부분도 아니다. 게다가 한화는 이 도루 이후 곧바로 강경학을 발이 느린 허도환으로 교체했다. kt 벤치에 대한 배려의 제스추어다.
9회말 연속 투수교체는 이미 예고됐던 바다. 김성근 감독(73)은 이날 1군에 등록된 김민우와 윤규진을 경기 상황에 관계없이 테스트해보겠다고 했었다. 불펜에서 보는 것과 실전에서의 모습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 8회까지는 여유가 없었다. 5점 차이는 한꺼번에 따라잡힐 수 있다. 9회말 1사가 되자 여유가 생겼다. 물론 김 감독이 두 투수를 모두 실전에 가동한 것은 다소 과한 면이 있다. 하지만 팀을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누구를 먼저 보고, 누구는 나중에 보고 할 여유는 없다. 한화도 겨우 6~8위권에서 고군분투하는 팀이다.
이런 부분까지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거의 매 경기 분노해야 할 것이다. 만약 한화가 '승자의 여유'라는 미명아래 대충 경기를 마무리했다면 신명철은 화가 나지 않았을까. 오히려 프로라면 상대의 그런 배려가 더 자존심상하는 일이 아닐까. 여러모로 따져봐도, 프로 10년차가 넘은 한 팀의 주장이 보여줄 행동은 아니다. 정작 신명철이 했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이날 kt는 9개의 안타를 쳤다. 한화보다 2개 적었다. 그런데 득점은 5점이나 적었다. 물론 한화가 kt보다 6개나 많은 볼넷을 얻어낸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kt 공격은 순조롭지 못했다.
4회와 6회, 9회에는 2사 후에 안타가 나와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특히 7회에는 선두타자 김상현이 우중간 2루타를 치고 나갔지만, 후속타 불발로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kt 야구의 현실이다. 아직은 미숙한 면이 많다. 게다가 '캡틴' 신명철은 이날 경기에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경기 후에 신명철은 상대팀에 손가락질과 욕설을 하기보다 kt 선수단을 불러모아야 맞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왜 졌는지, 자신은 왜 팀에 보탬이 못 됐는지를 동료들과 함께 반성하는 게 먼저다. '캡틴'의 빛나는 이니셜 'C'를 가슴에 단 선수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 'C'는 욕설의 이니셜이 아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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