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카드가 외쳤다. "영수야! 떠나도 떠난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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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반응은 권 혁(32)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영수처럼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가 지난 겨울 스토브리그에서 FA로 이적한 뒤 이제는 한화의 필승 아이콘으로 거듭난 그다. 어쩌면 삼성 시절보다 더 큰 주목과 인기를 끌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대구구장에 온 느낌이 남다른 건 배영수와 마찬가지였다. 경기 전부터 이리저리 오가며 감회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홈라커를 쓸 때는 잘 몰랐는데, 원정 덕아웃에 와보니 대구구장이 얼마나 낡았는지 알겠네요. 다른 팀이 대구구장에서 잘 못하는 이유가 이런 거 때문이었나보네"라며 익살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늘 3루측 홈팀 덕아웃에 앉아 있다가 1루측 원정 덕아웃에 있는 게 낯선 듯 했다.
두 선수는 지난 겨울 FA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팀내 입지가 줄어들던 권 혁의 이적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다. 그러나 배영수마저 삼성을 떠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다. 그럴만도 한 것이 배영수는 대표적인 '삼성맨'이었기 때문. '영원한 에이스'로 불렸다. 2000년 프로에 데뷔해 2014년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나기까지 무려 15년간 삼성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게다가 애초부터 대구 출신이라 야구장과 인근 골목 구석구석까지 훤하다. 단골 식당도 수두룩하고, 길을 가면 알아보는 이도 넘친다. 전날에도 택시를 탔다가 "니 와 갔노"라는 무뚝뚝한 경상도 아저씨의 토라진 목소리에 '아, 고향에 내려왔구나'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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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은 프로다. 사적인 감정은 딱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이다. 본 경기에 들어가면 애매한 감정은 한꺼번에 정리가 된다. '동료'가 아니면 '적'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후배인 권 혁이 먼저 본보기를 제대로 보여줬다. 권 혁은 이날 경기에 8회말부터 등판해 2이닝을 1안타 2볼넷 1실점으로 막아내며 승리를 따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주말 연패를 했기 때문에 오늘은 반드시 이겨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옛 동료나 과거 홈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게 정상이다. 승부에 나선 순간에는 사적인 정리는 잊는 것. 이들이 리그를 대표하는 프로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대구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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