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한국 프로야구에는 가장 '쓸데없는' 두 가지 걱정이 있었다. 하나는 '삼성 라이온즈 성적 걱정'. 다른 하나는 '김태균 타격 걱정'이다. 초반에 어떤 위기를 맞이하든지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느새 시즌 막판이 되면 삼성은 리그 최강자의 반열에 올라있고, 김태균도 기본적으로 타율 3할 이상은 찍는다. 삼성과 김태균을 걱정하는 건 정말 하릴없는 일이었다.
|
당시 김 감독은 권 혁에 대해 이런 말을 했었다. "중간에서 쓸 지 마무리로 쓸 지 고민 중이다. 만약 마무리를 하게 된다면 구종 하나 정도를 추가해야 하지 않나싶다." 단순 명료한 이야기다. 필승계투와 마무리. 두 가지 보직에 관한 고민. 그걸 가르는 변수로서의 '구종 추가'. 당시 기자회견에 있던 취재진은 이 팩트를 그대로 전했다.
그런데 이 발언의 행간에는 또 다른 의도가 숨어있었다. 입단 기자회견 후 열흘 뒤. 김 감독은 스포츠조선과의 통화에서 당시 발언의 '진짜 의미'<본지 12월22일자 보도>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구종 추가'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실제로 투수가 새 구종을 비시즌에 금세 추가해서 다음 시즌에 써먹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김 감독이 말한 '구종 추가'는 결국 '투구 패턴의 다양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
특히 김 감독은 구체적으로 권 혁의 사용법까지 예고했었다. 김 감독은 "구종을 하나 더 만들면(=투구 패턴을 다양화하면) 권 혁이 1~2이닝 정도 더 버텨낼 힘이 생긴다. 그렇게 된다면 중간에서 좀 더 길게 던지게 해도 되지 않나 싶다. 게다가 우리 팀에는 1이닝 정도 확실하게 막아줄 윤규진이라는 투수도 있다."
이미 5개월 전부터 김 감독은 권 혁의 운용법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두고 있던 셈이다. 애초의 베스트 플랜은 권 혁이 경기 후반을 책임진 뒤에 윤규진을 1이닝 마무리로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윤규진이 가벼운 어깨 통증으로 빠져있기 때문에 권 혁이 그대로 경기를 끝내는 역할까지 하게 된 것이다. '윤규진 부상'이라는 변수가 생겼지만, 권 혁을 준비시켜 놓았기 때문에 한화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처럼 김 감독은 이미 5개월전부터 권 혁을 어떤 식으로 쓸 지에 대한 구상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래서 1월 고치-2월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기간에 권 혁을 집중 조련했다. 투구 폼도 조정했고, 무엇보다 많은 투구량을 소화하도록 했다. 캠프에서 공을 많이 던져야 시즌을 힘있게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권 혁은 캠프 기간 중 단 한 번도 아파서 쉰 적이 없다. 묵묵히 주어진 훈련량을 다 소화해냈다. 그렇게 쌓아온 훈련의 결실이 이제 겨우 조금 드러났을 뿐이다. 이런 권 혁의 운용법에 대해 '혹사'라거나 '옛 방식'이라고 하는 건 그야말로 난센스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