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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되살아난 '응용본색'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3-09-02 10:13


1일 오후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2013 프로야구 넥센과 한화의 경기에서 3회말 한화 김응용 감독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 2013.09.01.



9월 첫날부터 올드 야구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인상깊은 장면이 나왔다.

강도로 치면 추억의 과거에 비해 100분의1 정도밖에 안되지만 야구팬들의 커다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장면은 바로 '어르신' 김응용 감독(72·한화)의 '발끈'이었다.

김 감독은 1일 넥센전에서 살짝 거칠게 심판 판정에 항의했다. 3-3 동점이던 3회초 수비에서 박병호의 좌중간 안타때 1루 주자였던 이택근이 3루까지 노렸고 3루수 이대수에게 태그하는 과정이 김 감독을 뿔나게 했다.

TV중계 리플레이까지 챙길 필요없이 육안으로 보더라도 명백하게 이택근의 태그아웃이 맞았다. 하지만 3루심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김 감독이 거구를 이끌고 판정에 어필하러 3루까지 걸어나갔고, 판정이 번복되지 않자 덕아웃으로 '귀가'하는 길에 홈플레이트 앞에서 오른발을 걷어차는 동작을 취한 뒤 덕아웃 옆 전력분석실을 박차고 들어갔다.

김 감독이 지난해 말 한화 감독으로 복귀한 이후 이같은 행동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이 과정에서 관중석에서는 '김응용'을 응원하는 연호가 쏟아졌다.

판정이 어이없기도 했지만 해태 시절 김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호랑이'이미지가 다시 되살아나면서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응용본색'이 돌아온 것이다.

김 감독은 한동안 '연성화'됐었다. 하지만 사정이 어려운 팀을 만나 현역으로 복귀하면서 성적이 부진하자 감출 수 없는 승부욕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야구팬들에게는 볼썽사납지 않는 노장의 패기였다.


김 감독은 스포츠단 사장 출신이다. 그래서 그의 터프한 행동은 색다르게 다가온다. 김 감독은 지난 2000년 삼성의 감독으로 부임할 때만 해도 해태 시절 보여줬던 강경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해 일부러 안간힘을 썼다.

해태에서 이른바 '왕조'를 이끌 때만 해도 김 감독은 심판과 심심치 않게 대거리를 하는 것은 물론 판정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김 감독의 발끈 행동은 벤치 클리어링처럼 야구팬들에게는 또다른 볼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그랬던 그가 삼성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의 주인공처럼 됐다. 김 감독은 당시 "삼성 구단이 나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데 뭔가 보답을 해야 하지 않나. 모기업 삼성그룹의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그것에 반하는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며 스스로를 통제했다.

이후 김 감독은 완전히 달라지다시피했다. 2004년 12월 사장으로 승진한 뒤에는 더욱 온순해졌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으레 사장이라는 자리가 보는 시선을 넓여야 한다. 경기의 승패에 일희일비했다가는 체통이 서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 삼성의 전력은 성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 잘 돌아갔다. 그러니 당시 김 사장은 굳이 '발끈'할 일도 없었다.

이와 함께 김 감독의 이미지는 '강성'을 버리고 급속도로 연성화된 게 사실이다. 그랬던 그가 13년 만에 '응용본색'을 되찾은 것이다.

남에게 줄 수 없는 승부욕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시즌 내내 하위권에서 맴도는 한화를 이끌다 보면 웬만한 성인군자라도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든 게 스포츠의 세계다.

하지만 추하지가 않다. 13년간 잊었던 김 감독의 터프함을 아직도 추억하는 팬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추억의 영화 '영웅본색'이 가끔 당기는 것처럼 '응용본색'의 부활은 무죄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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