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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재진입'을 위한 KIA의 마지막 '히든 카드'. 에이스 윤석민(27)의 '마무리 전환'이 이상적인 형태로 자리매김할 듯 하다. 윤석민이 공식 보직 전환 첫 날 마무리로 등판해 깔끔하게 경기를 끝냈다. 비록 세이브 상황은 아니었으나 마운드에서의 강한 자신감과 위력적인 구위가 향후 반전 활약을 예감케했다.
윤석민은 이 모의고사를 훌륭하게 치러냈다. 빠르고 공격적인 승부로 넥센 클린업트리오를 처리한 것. 첫 상대인 3번 이택근은 3구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볼카운트 2S에서 3구째 136㎞짜리 날카로운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을 찔렀다. 이택근은 멍하니 선채 삼진을 당했다. 4번 박병호에게는 초구에 안타를 맞았다. 그러나 윤석민은 흔들리지 않았다. 5번 김민성을 볼카운트 2B2S에서 역시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단 10개의 공을 던져 경기를 끝내는 모습. KIA가 올 시즌 내내 원했던 마무리의 본색이었다. 더불어 4강 재진입의 희망이기도 했다.
이날 경기에 앞서 선 감독은 "남은 시즌 윤석민을 마무리로 쓰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희미해져가는 4강권 재진입의 기회를 잡기 위해 드디어 KIA가 '최종 카드'를 꺼낸 것이다. '더 이상 밀리면 끝'이라는 공감대가 전체 선수단에 퍼져있는 가운데, 윤석민이 스스로 자원한 결과다. 선 감독은 "윤석민이 먼저 마무리 전환 의사를 밝혔다. 마침 외국인 투수 빌로우와 재활훈련을 마친 양현종이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오는 상황이라 윤석민이 마무리로 가도 로테이션에 크게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당시 코칭스태프의 결론은 윤석민이었다. 신인이던 2005년과 2006년 마무리로 총 26세이브를 기록한 걸 고려한 결정. 하지만 시즌 중반 이후 유동훈의 구위가 살아나며 붙박이 마무리를 맡았고, 윤석민은 다시 선발로 복귀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그해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계기가 됐다.
현재 6위로 밀려 있는 KIA의 상황은 4년 전보다 안 좋다. 당시에는 그래도 시즌 초반이라 여러 시도를 해볼 만한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4일까지 4위 두산에 5경기 뒤처진 상황이라 '4강 재진입'을 위해서는 마지막 수를 짜내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선 감독 역시 바닥까지 떨어진 팀 전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불안정한 마무리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시즌 초 마무리였던 앤서니를 7월에 퇴출한 이후 송은범을 새로운 마무리로 활용하려고 했으나 송은범도 불안한 모습을 자주 노출했다. 결과적으로 KIA는 7월 이후 무려 7번의 역전패를 당했는데, 이는 9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숫자다. 결국 마무리 보강이 시급했는데, 때마침 윤석민이 스스로 마무리 보직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아무리 자원했다고 해도 윤석민의 마무리 전환은 상당히 파격적인 결정이다. 성공한다면 순위 반전을 노리는 KIA에는 큰 힘이 될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선발 요원 1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 감독이 이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던 것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판단과 함께 빌로우와 양현종의 가세로 선발진에 다소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구위가 점점 살아나고 있는 윤석민에 대한 강한 신뢰감이 있었다.
선 감독은 "앞으로 선발진은 기존의 소사와 김진우에 재활을 마친 양현종과 외국인 투수 빌로우로 운용된다. 마지막 남은 5선발 자리는 서재응과 송은범 중에서 구위가 좋은 투수에게 맡길 계획이다. 서재응이 제 몫을 해줄 경우 송은범은 중간에서 롱릴리프 역할을 하게 된다"며 향후 투수진 운용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선 감독의 구상은 일단 윤석민이 보직 전환 후 첫 등판에서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며 순조롭게 스타트를 끊었다. 윤석민이 4일 광주 넥센전에서의 모습을 계속 이어갈 수만 있다면 KIA는 벌어진 승차를 좁히는 데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과연 윤석민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철벽 마무리의 모습을 보이며 KIA를 4위권 안쪽으로 다시 이끌 수 있을지 기대된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