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진이 마침내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입성에 성공했다.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박찬호가 다저스의 에이스로 활약할 당시 국내 프로야구는 흥행 암흑기였다. 한시즌 관중이 200만~300만명대에 머물렀다. 박찬호의 맹활약에 밀려 상대적으로 국내 야구가 위축된 측면이 있었다. 박찬호가 등판하는 날, 팬들은 새벽잠을 설치며 TV 앞에 앉았고, 경기 후에는 그의 투구 내용과 향후 전망을 놓고 메이저리그를 즐겼다.
류현진이 다저스의 주축 선발투수로 자리를 잡는다면 90년대 박찬호 신드롬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른바 '류현진 신드롬'이 국내 야구를 강타할 수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힘겹게 쌓아놓은 흥행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류현진 등판 당일 다저스 경기에 대한 집중도는 말할 것도 없다. 그가 던지는 경기를 1회부터 9회까지 한 순간도 빼놓을 수 없다. '박찬호 시대'와 마찬가지로 류현진이 던지는 이닝 뿐만 아니라 다저스 공격 이닝도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다저스 타선의 득점과 불펜 투수들의 피칭이 류현진의 승리 여부를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오로지 류현진이 선발투수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메이저리그의 대표타자로 성장한 클리블랜드 추신수가 지난 몇 년간 맹활약했음에도 끄떡없던 국내 야구의 위상이 류현진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뭐가 있겠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자와 선발투수는 팬들의 관전 행태가 다르다. 타자는 매일 경기에 출전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해당 타자 즉 추신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만 관심이 있지 클리블랜드가 수비를 하거나 다른 타자들 순서에서는 집중도가 떨어진다. 한 경기에 보통 4~5번 돌아오는 추신수 타석에만 팬들의 시선이 국한된다.
류현진이 연승 행진을 달리기라도 하면 한반도 전역이 메이저리그, 적어도 LA 다저스라는 한 팀의 행보에 일희일비할 수 있다. 흥행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한 쪽에 볼거리가 있으면, 다른 한 쪽은 외면받기 쉽다. 90년대말 이후 국내 야구의 환경이 탄탄해지고 흥행 기반도 넓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류현진의 활약을 그저 편하게 즐길 수 만은 없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