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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박찬호 신드롬', 과연 재현될까.
박찬호와 류현진은 올해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박찬호는 이제 현역에서 물러났고, 류현진은 박찬호가 걸었던 길로 막 들어섰다. 류현진이 15년만에 미국에서 한국인 '신드롬'의 주인공이 될지는 내년 봄이면 지켜볼 수 있다. 무엇보다 류현진도 박찬호와 똑같은 선발투수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5일마다 등판하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기다리는 '설렘'이 있다.
박찬호가 풀타임 선발 첫 해였던 97년부터 FA 대박을 터뜨린 2001년까지 그가 등판하던 날 국내팬들은 새벽잠을 설치며 TV 앞에 앉았다. 다저스의 연고지 LA는 한국과 16시간(미국의 서머타임 적용)의 시차가 있다. 다저스가 홈에서 낮경기를 하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고, 야간경기를 하면 오전에 관전할 수 있다. 새벽잠을 설친다는 표현은 이래서 나온 말이다. 팬들은 박찬호가 던지는 이닝 뿐만 아니라 다저스의 공격 이닝도 집중해서 봤다. 덩치 큰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160㎞에 이르는 강속구로 잡아내던 박찬호를 향해 박수를 보냈으며, 다저스 타자가 홈런을 날리기라도 하면 함성을 질렀다. 90년대 박찬호의 동료 타자 라울 몬데시, 에릭 캐로스, 마이크 피아자 등은 국내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찬호가 등판하던 날 경기가 끝나면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늘 '박찬호' 이야기를 했다. 경기를 분석하고 다음 경기를 예상하는 것은 대화의 기본 주제였다. 이제는 류현진이 그 주인공이 될 위치에 섰다. 더구나 TV를 통해 볼 수 밖에 없었던 박찬호 시대와 달리 지금은 모바일로 시간, 장소의 제한없이 메이저리그를 즐길 수 있다. 류현진 팬층이 더욱 폭넓게 형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류현진 신드롬이 거세게 일 경우 국내 프로야구가 위축될 소지가 있다. 90년대 후반 국내 프로야구의 시즌 관중은 200만~300만명대에 머물렀다. 관중규모 700만명 시대에 들어선 지금과 비교하면 상상하기 힘든 수치다. 박찬호의 맹활약에 상대적으로 국내 야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측면이 있던 시절이다. 프로야구 환경이 당시와는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류현진 신드롬의 영향을 염두에 둬야 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