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일본 생활에 염증이 난 이승엽(36)은 친정 삼성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2003시즌을 끝으로 일본 정벌을 꿈꾸며 삼성을 떠난 지 8년 만에 고향 달구벌 대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2012시즌, 9년 만에 국내야구 무대에 섰다. 그는 목표 하나만 세웠다. 팀 우승. 2002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본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다시 들어보고 싶었다. 그걸 위해 다른 개인 타이틀은 모두 포기해도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홈런왕, 타격왕 등의 타이틀은 마음에 담지도 않았다. 대신 우승은 꼭 필요했다.
그렇게 부진했던 삼성은 7월초 1위로 치고 올라가 끝까지 내달렸다. 페넌트레이스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그리고 SK를 제압하고 2연패를 차지했다. 이승엽은 목표를 달성했다. 그는 1차전에서 결승 투런 홈런을 쳤다. 6차전에선 3타점 3루타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또 첫 한국시리즈 MVP에 뽑혀 기쁨이 두배가 됐다. 기자단 유효 투표 71표 중 최다 47표를 받았다. 한국시리즈 2승 장원삼(10표)을 제쳤다.
그의 가세로 뻑뻑하던 삼성 팀 분위기에 윤활유가 돌기 시작했다. 이승엽은 실력 면에서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인 수준에 오른 '국민타자'다. 후배들이 그의 실력을 의심할 수 없다. 같이 뛰고 함께 식사하는 것만으로 신기해할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14년 후배 김상수는 어릴적 우상과 매일 함께 뛰고 경기하는게 꿈같다고 했다.
이승엽은 나이로 따졌을 때 팀내 두번째다. 그런 고참이 가장 먼저 출근하자 후배들도 출근시간이 빨라졌다. 하나라도 옆에서 보고 배우려고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또 그는 이름값이 떨어져 용품 후원이 부족한 후배들을 가장 먼저 챙겼다. 이승엽에겐 글러브, 방망이, 장갑 등 용품 후원이 풍족했다. 그걸 가장 필요로 하는 후배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이승엽에게 안 받아 본 선수가 없을 정도다.
후배들은 처음에 이승엽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높은 명성 때문이었다. 이승엽은 후배들에게 썰렁한 농담을 갖고 다가갔다. 개그콘서트 같은 TV 개그프로그램에서 배운 걸 후배들과 얘기하면서 녹여 넣었다.
이승엽이 합류하기 전 삼성 구단은 타자군과 투수군의 왕래가 뜸했다. 가교 역할을 할 선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들어오자 스마일맨 안지만 같은 선수가 이승엽 옆에 기웃거렸다. 그러면서 타자와 투수가 한데 어울려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 팀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이승엽의 올해 연봉은 8억원(인센티브 3억원). 그는 8억원 이상의 돈값을 했다. 조만간 삼성은 이승엽과 재계약할 것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