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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큰 경기는 큰 것 한방으로 승부가 나는 경우가 많다. 팽팽한 투수전도 홈런 한방으로 단숨에 흐름이 바뀌곤 한다. 홈런 등 장타를 앞세운 야구 스타일을 롱 볼, 반대로 단타 위주에 번트나 도루, 상대 수비의 허점을 파고드는 주루 플레이로 차곡차곡 한 베이스씩 나아가 결국 점수를 짜내는 야구가 스몰볼이다. 벤치에서 세세한 작전을 구사하기보다 타자에게 맡기는 메이저리그 스타일이 전자에 해당된다. 롱 볼은 호쾌하고 스케일이 커 보이지만 잔재미가 떨어질 수 있다. 이에 반해 스몰볼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지만 왠지 답답해 보인다. 메이저리그가 극단적인 롱 볼이라면, 일본 프로야구는 스몰볼의 첨단을 달리고, 한국 프로야구는 미국과 일본의 중간 정도라 할 수 있다.
우선 양팀 선발 투수가 제대로 역할을 한 것이 스몰볼의 배경을 만들었다. 1차전에서 8이닝 완투패를 당했던 SK 선발 윤희상 7회까지 2점만 내줬고, 삼성 선발 윤성환도 6이닝 1실점 역투를 펼쳤다. 양팀 선발이 동시에 6이닝 이상을 던진 건 올해 한국시리즈 들어 처음이다. 선발 투수의 공이 위력적이다보니 큰 것 한방을 노려기 어려웠다. 어쩔수 없이 양팀 모두 짧게 끊어치는 단타 위주의 타격을 했고, 주자를 한 베이스 더 보내기 위해 피말리는 공방전을 펼쳤다. 삼성 이승엽이 대표적이다. 이승엽은 1회 첫 타석과 3회 두 번째 타석 모두 풀스윙이 아니라 배트를 갖다대는 듯한 스윙으로 우전안타를 만들었다.
베이스 사이의 거리는 27.43m. 보통 발이 빠른 선수가 3초대 초반으로 주파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때로는 마라톤 풀코스 거리인 42.195km 이상으로 멀게 느껴지는 거리이기도 하다. 아무리 안타를 쏟아내도 1, 2, 3루를 차례로 점유해서 홈까지 들어와야 득점이 된다. 삼성과 SK 모두 한 베이스를 더 가기 위해, 반대로 더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총력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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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는 득점 찬스에서 특유의 짜내는 야구에 실패했다. 1-2로 뒤지던 9회초. 선두타자 최 정이 중월 3루타를 때리고 나갔지만, 결국 오승환의 역투, 삼성의 빈틈없는 수비에 막혀 홈에 도달하지 못했다. 7회초에는 선두타자 이호준이 2루타를 때렸는데도 삼성 불펜에 막혀 점수를 뽑지 못했다. 또 4회초 2사 1.3루에서는 SK 1루 주자 김강민이 스타트를 끊자 삼성 포수 이지영이 2루 송구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 때 3루 주자 이호준이 홈을 파고들려다가 협살에 걸려 아웃이 됐다. 베이스 하나를 놓고 이호준과 삼성 포수, 내야진은 치열하게 맞섰다. 어이없어 보이는 플레이였지만 삼성팬이나 SK팬이나 모두 손에 땀을 쥐며 보게 만든 장면이었다.
삼성의 득점 장면을 살펴보자.
1회말 후 단타 2개로 1사 1,3루를 만든 삼성 타선은 SK 선발 윤희상과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고, 결국 상대 투수의 연속 폭투 덕분에 선취점을 뽑을 수 있었다. 양쪽 모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가운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3회말 1사 1루에서는 최형우의 우익수쪽 타구를 SK 임 훈이 빠트리면서 1사 1,3루 찬스를 잡았다. 후속 타자 박한이가 유격수쪽으로 땅볼을 때렸을 때, 삼성 유격수 박진만은 홈 송구를 포기하면서도 더블플레이를 노리지 않고 1루로 공을 던졌다. 이때 삼성 3루 주자 이승엽이 홈을 파고들었다. 바둑처럼 한 수를 둘 때마다 상대가 반응하는 경기.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한국시리즈 5차전은 잘 지어진 스몰볼의 감칠맛이 대포 난무하는 롱 볼 못지않음을 보여준 경기였다.
잠실=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