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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메인 요리라면, 시구 이벤트는 에피타이저쯤 되겠다. 먹음직스러운 본 요리를 즐기기 전에 입맛을 돌게 만드는 그런 역할. 경기전 유명 연예인이나 사회 저명인사, 스포츠 스타, 야구인이 등장하는 시구 행사가 언제부터인가 중요한 이벤트가 됐다. 특히 여성 시구자는 다소 딱딱한 남자들만의 스포츠 프로야구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불어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성 연예인이 자주 야구장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KBO 관계자에 따르면 아무리 관심이 집중되는 한국시리즈라고 해도 지방경기의 경우 특급 스타를 모시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이동시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일정을 맞추기 어렵워서다.
시구를 제안하면 대다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말을 꺼내기 어려울 때도 있다. 한국시리즈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시구자를 섭외하는데, 경기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는 6,7차전 시구를 제안할 때다. 그런데 2003년 7차전 시구자로 나섰던 가수 박정아는 2004년 1차전 시구까지 맡았다. 한국시리즈 2경기 연속 시구는 박정아가 유일하다. 물론, 사연이 있다. 2003년 7차전 시구 섭외를 했을 때 박정아 측은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다행히 그해 한국시리즈 진출팀 현대 유니콘스와 SK 와이번즈는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다. 2004년 1차전 시구는 본래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가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전 총리가 1차전에 임박해서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에 따른 대책회의 참석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KBO는 급히 시구자를 물색했는데, 박정아와 연락이 닿아 다시 시구를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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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선수 박태환이 2007년과 2008년 2년 연속 시구를 했고, 피겨여왕 김연아,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 골프 김미현 최경주 안시현, 마라톤 황영조, 양궁 윤미진, 배드민턴 김동문, 체조 여홍철 등이 마운드에 올랐다. 올림픽이 개최된 해에 열린 한국시리즈 때는 금메달리스트가 단골 시구자였다. KBO는 올해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의 시구를 검토했으나, 대상자 대다수가 정규시즌 때 각 팀에서 이미 시구를 해 제외했다.
프로야구 초기만 해도 시구는 정치인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몫이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OB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는 유흥수 충남지사가 했다.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시구는 팬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시구인데, 요즘은 거의 사라졌다. 야구명문 경남고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현직에 있던 1994년과 1995년 잇따라 시구를 했다. KBO는 정치적인 악재가 없을 경우 매년 청와대에 대통령의 시구가 가능한지를 문의한다.
외국인으로는 피터 오말리 LA 다저스 전 구단주가 유일하게 1982년 4차전과 1989년 5차전에서 공을 던졌다. 초기에만 해도 매경기 시구를 한 게 아니었다. 시리즈 전 경기가 시구가 시작된 건 1996년부터다.
KBO가 시구자를 고를 때 신경쓰는 것 중 하나가 공익성이다. 기부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가수 션-탤런트 정혜영 부부가 올해 잠실에서 열리는 경기에서 시구를 맡는다. 몇 년 전부터 섭외했는데 스케줄이 안 맞아 뒤늦게 성사가 됐다.
KBO가 시구자를 섭외하는데, 먼저 시구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온 경우도 있다. 2008년 5차전에서 시구를 맡았던 탤런트 홍수아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지명도가 높았지만 두산팬 이미지가 강해 고민이 컸다.
한국시리즈 시구자에게는 따로 수고비를 지급하지 않는다. 지방 경기 때도 교통비 지원이 없다. 류대환 KBO 홍보팀장은 "제작비가 20만원쯤 들어가는 동으로 만든 야구공을 기념품으로 준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