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병호를 잡아끈 아내의 한마디 "자기가 언제 3할 타자였어"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9-27 08:59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가 26일 목동구장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목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7년 간의 기다림과 인내, 노력이 어우러져 활짝 꽃망울을 터트렸다. 넥센 히어로즈 1루수 박병호(26)만큼 야구인생의 극과 극을 오간 선수도 드물 것 같다. 성남고 시절 4타석 연속 홈런을 터트렸고, 2005년 당시 신인 야수 최고액인 계약금 3억3000마원을 받고 LG에 입단했다. 그러나 박병호는 기대만큼 성장을 하지 못했다.

입단 1, 2년차 때는 그래도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군대를 갔다오고, 경력이 쌓여가는데도 자지를 잡지 못하면서 자신감이 점점 사라졌다. 삼진에 대한 두려움, 공을 어떻게 때려야하는가라는 원초적인 걱정.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없었다.

야구를 포기해야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런데 지난해 7월 31일 히어로즈로의 트레이드가 박병호의 야구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결혼을 통해 야구에 대한 절실함이 생겼고, 새로운 기회는 오랫동안 움츠리고 있던 재능을 깨웠다. 30홈런-100타점 고지에 오른 박병호는 홈런과 타점왕이 확정적이고, 가장 유력한 MVP 후보다. 만년 유망주로 끝날 것만 같았던 박병호가 올시즌 오랜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활짝 켤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26일 목동구장에서 박병호를 만났다.

왼쪽 팔뚝에서 꿈틀대는 마우리족 전사

웬만한 남성 장딴지 굵기인 박병호의 왼쪽 팔뚝에는 큼지막한 문신이 세겨져 있다. 문신하면 자연스럽게 조직폭력배를 떠올리는 게 우리 사회다. 문신에 대한 편견이 있기에 문신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지난해 못 보던 건데 궁금했다. 12월 결혼한 아내는 흔쾌히 허락을 했을까, 조금 복잡한 그림(?)처럼 보이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걸까, 나중에 지울 수 있는 종류일까, 이런 궁금증 말이다.

그런데 사연이 있었다. 지난 2월 히어로즈는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의 텍사스 레인저스 캠프에서 시즌을 준비했다. 텍사스가 캠프에 입소하기 전에 시설을 썼는데, 당시 텍사스 선수들의 라커를 사용했다. 그때 박병호는 텍사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가 왼쪽 팔에 세긴 뉴질랜드 마오리족 전사 문신을 보여주고 있다. 목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스의 슬러거 조시 해밀턴의 라커에 붙어 있는 사진을 유심히 봤다고 한다. 사진 속 조시 해밀턴의 팔에 박혀 있는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조시 해밀턴이 워낙 유명한 선수이기에 알고는 있었지만 문신을 자세히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박병호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한 문신이 강렬했다. 귀국하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강인해보이는 이미지의 문신을 찾아봤다"고 했다.

지난 4월 박병호는 용맹한 전사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문신을 왼쪽 팔에 세겼다. 스티커 문신처럼 나중에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라 영구적인 문신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듯한 불꽃이 칼을 감싸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박병호는 아내 이지윤씨가 다행히 허락을 해줬다고 한면서도 "내가 고집이 센걸 아니까 그냥 내버려둔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박병호의 몸에는 마오리족 전사 문신 말고도 크고작은 문신 3개가 또 있다. 유니폼 상의를 입었을 때 드러나는 건 마오리족 문신이 처음이었다. 프로 7년 간 유망주에 머물렀던 박병호는 강렬한 무엇인가가 필요했는데, 문신이 일정 부분 그런 작용을 한 것 같다.

박병호는 "나에게 문신은 스트레스를 푸는 방편이면서도 자기 만족을 위한 한가지 방법이다. 문신에 대한 안 좋은 시각이 많은데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기가 언제 3할 타자였어?"

박병호에게 올해 야구가 잘 되는 이유를 묻자 "결혼을 잘 한 것 같다. 복덩이다"며 아내자랑부터 했다.

지난해 12월 스포츠전문채널 KBS N의 야구전문 아나운서 출신 이지윤씨와 결혼한 박병호는 결혼이 야구인생을 바꿔놓은 것 같다고 했다. 그전에도 치열하게 야구와 씨름을 했지만 결혼은 그가 야구를 절실히, 잘 해야할 이유를 만들어 줬다. 박병호는 "집에가면 경기장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모두 풀린다. 아내가 집에서 나를 기다린다는 생각, 누군가를 위해 야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준 게 결혼"이라고 했다.

아내가 야구전문 아나운서 출신이다보니 말이 통해서 좋다. 이따금 조언을 해주기도 하는데 남다른 울림이 있단다.

"자기가 언제 3할 타자였어? 나는 자기가 볼넷을 얻어 나가는 것만 봐도 신기해. 자신감 잃지 말고 야구해요."

낮은 타율에 고민이 많았던 지난 4월 의기소침해 있던 남편에게 아내가 해준 이 말을 박병호는 잊지 못한다.

박병호가 육군 학사장교 출신인 이씨를 처음 본 건 2009년 TV를 통해서다. 당시 KBS N은 새로운 아나운서인 이씨를 소개하는 장면을 몇차례 내보냈는데, 장교출신이 아나운서를 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왠지 호감이 생겼다고 했다.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 목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한동안 먼발치에서 바라만 봤다. 2009년 겨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연예인 야구대회 때는 바로 앞에서 히어로즈 마스코트 턱돌이를 인터뷰하고 있었지만 말을 붙이지 못했다. 2010년 초 이씨가 취재차 LG의 오키나와 스프링캠프를 찾았는데, 박병호는 "무명이었던 나랑 인터뷰를 할 일이 없었다"고 했다.

한동안 속앓이를 했던 박병호는 이씨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그리고는 휴대폰 문자로 구애를 했다. 박병호는 "장난으로 이러는 게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판단해 연락을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반듯한 청년 박병호의 진심은 4세 연상인 이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남편이 자신을 복덩이라며 치켜세울 때마다 이씨는 "남편이 잘 한 거지 내가 잘 한 게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LG시절, 야구를 포기하고 싶었다

박병호에게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말해달라고 했더니 9월 21일 한화전에서 기록한 30호 홈런을 말했다. 30번째 홈런의 의미는 박병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다.

박병호는 "30홈런을 때리고 덕아웃에 들어왔을 때, 평상시와 분위기가 달랐다. 보통 때는 '나이스 배팅'이나 '잘 쳤어' 정도의 축하 멘트에 하이파이브를 하고 마는데, 이날은 선수 전원과 코칭스태프가 모두 '축하한다'는 말을 했줬다"고 했다. 박병호는 이어 "100타점을 기록하자 박흥식 타격코치가 내 얼굴을 어루만지면 가볍게 안아줬다. 뭔가 의미가 있는 기록을 이뤄냈다는 뿌듯함에 전율을 했다"며 활짝 웃었다.

박병호는 "LG 시절 기회가 많았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나 늘 쫓기는 기분이었다. 삼진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컸다. 타석에 들어갈 때마다 공을 어떻게 쳐야하나 걱정을 했다"고 말했다. 내가 못 쳐도 나를 대체할 선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게 늘 두려웠다. 못 하면 바로 2군으로 내려가야했고, 바른 다른 선수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1, 2년차 때는 젊었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군대를 갔다오고 시간이 흐를수록 유망주 박병호는 야구 못하는 박병호로 이미지가 바뀌어 갔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야구를 포기해야할 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 목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1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일이었다. 진작부터 LG와 넥센이 트레이드를 추진중이고, 박병호가 여기에 포함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마감일 늦게까지 이야기가 없어 소문으로 끝나나 싶었다. 그런데 그날 밤 9시 구단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트레이드 통보였다. 상대팀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넥센이라고 했다. 박병호는 "아쉬운 마음이 분명 있었지만 다시 기회를 잡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20홈런-20도루'가 눈앞이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반짝스타들이 우리곁은 지나갔다. 박병호는 어떨까. 박흥식 타석코치는 박병호가 앞으로 부상만 없다면 향후 7~8년 간 매년 홈런 30개를 때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타격의 메커니즘을 깨우쳤고, 야구를 대하는 태도, 근성이 이승엽을 닮았다고 했다.

박병호 또한 이전과는 다르다. 그는 "올해 30홈런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왔기 때문에 홈런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건 분명하다. 30홈런이 생갭다 쉽게 나왔다. 크게 걱정을 안하고 내년을 준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고 했다.

이번 시즌 전까지 박병호가 기록한 도루가 11개인데, 올해 17번을 훔쳤다. 호타준족인 상징인 '20홈런 -20도루'가 눈앞에 있다. 다른 홈런타자들이 그런것처럼 박병호는 그동안 도루와 별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올시즌 염경엽 주루코치와 의기투합하면서 달라졌다.

사실 발이 느린 박병호가 보통 선수처럼 스타트를 끊으면 도루 성공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 올시즌 염 코치가 상대 투수의 구질, 성향을 파악해 도루 사인을 내준다. 박병호는 "도루가 3개 남았는데 상대도 내가 나가면 뛸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 또 무리하게 도루를 하다가 다칠 수 있어 조심스럽다. 하지만 앞으로 20-20 기회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힘들겠지만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