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결국 성적으로 말한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면 해임 통보가 날아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뛰어난 조련사라고 해도 성적 부진까지 넘어서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쯤에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넥센이 과연 4강 전력이었는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이 김 감독에게만 있는지 말이다.
조태룡 히어로즈 단장은 "중심타선에 이택근 박병호 강정호가 있었고, 신인 서건창까지 잘 해줬다. 나이트와 밴헤켄 외국인 투수 두 명이 에이스 역할을 해줬는데도 부진했다"고 했다. 결국 다른 팀에 뒤지지 않는 멤버를 갖고도 김 감독의 무능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는 설명이다.
히어로즈 구단은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는 기업구단이 아니라 구단 자체가 기업인 야구전문기업이다. 단순하게 정리를 한다면 성적을 내고 지명도를 높여 광고를 따내야 팀을 운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표 등 구단 수뇌부는 신인 드래프트 때면 현장에 나와 선수를 직접 뽑았다. 선수 트레이드 또한 코칭스태프가 아닌 구단 프런트가 주도했다. 히어로즈 구단 수뇌부는 아마추어 야구 전문가를 넘어 프로구단을 전문적으로 운영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모기업에서 낙하산처럼 내려오는 다른 구단 사장, 단장과는 전혀 성격이 달랐다.
그런데 이번 김 감독 경질을 보면 이 대표 등 히어로즈 구단 수뇌부가 자가당착에 빠진 것 같다. 후반기 경기 운영이 불만족스럽다고, 내년 시즌에도 비전이 없다고 용도폐기를 결정한 그 김 감독을 선임했던 사람이 바로 이 대표다.
더구나 히어로즈는 2009년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의 3년 계약 마지막 해인 지난해 초 덜컥 3년 재계약을 발표해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히어로즈는 "계약 기간에 신경쓰지 않고 안정적으로 팀을 이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기 재계약을 결정했다"고 했다. 그렇게 전폭적인 믿음을 보여주더니, 이젠 돌연 "성적을 낼 수 있는 지도자를 영입하겠다"고 한다.
먼저 야구 전문가를 자처해 온 이 대표와 조 단장이 먼저 자신들의 안목을 자책해야 할 것 같다. '비전이 없는' 지도자에게 4년이나 지휘봉을 맡기고, 더구나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재계약을 해줬으니 말이다.
넥센 구단은 그들이 내세운 성적부진이 감독 경질 이유가 맞다면 그에 앞서 사람의 능력을 보는 자신들의 눈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먼저 팬들에게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이 운영하는 구단이기에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히어로즈는 올시즌 화끈한 야구로 수많은 팬들을 끌어모은 팀이다. 이 대표 등 대주주 몇몇의 팀이 아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