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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전반기는 이장석 덕분, 후반기는 김시진 탓?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9-17 20:50


프로는 결국 성적으로 말한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면 해임 통보가 날아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뛰어난 조련사라고 해도 성적 부진까지 넘어서기는 어렵다.

넥센 히어로즈는 17일 김시진 감독을 경질하면서 후반기 성적 부진을 이유로 들었다. 지난 5월 말 팀 창단 5년 만에 처음으로 중간순위 1위에 올랐던 넥센은 7월 초까지 4위권을 유지하다가 이후 4강 레이스에서 사실상 탈락했다.

전반기 기대치가 높아졌는데, 후반기 곧두박질쳐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으니 그럴만도 하다. 눈앞에 어른거리던 4강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니 허탈했을 것이다. 후반기 흐트러진 분위기를 추스르지 못한 김 감독에 대한 불만이 컸을 법도 하다.

그런데 이쯤에서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넥센이 과연 4강 전력이었는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이 김 감독에게만 있는지 말이다.

조태룡 히어로즈 단장은 "중심타선에 이택근 박병호 강정호가 있었고, 신인 서건창까지 잘 해줬다. 나이트와 밴헤켄 외국인 투수 두 명이 에이스 역할을 해줬는데도 부진했다"고 했다. 결국 다른 팀에 뒤지지 않는 멤버를 갖고도 김 감독의 무능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뜯어보면 논리가 좀 이상하다. 시즌 전에는 넥센 관계자 누구도 4강을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이택근 김병현을 영입하면서 내부에서 기대치가 얼마나 올라갔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대외적으로 그랬다. 과거 한 시즌 23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는 강정호나 객관적인 성적 외에 리더십이 뛰어난 이택근은 논외로 치더라도, 지난 시즌 중반 LG에서 영입한 박병호, 신고선수로 영입한 서건창, 지난해 시즌 최다패(7승15패)를 기록한 나이트, 검증이 안 된 외국인 투수 밴헤켄은 로또나 마찬가지였다. 이만큼 성적을 낼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전력이다. 이장석 대표를 정점으로 한 히어로즈 구단 프런트가 4강 전력을 만들어 줬는데도 활용하지 못했다고 김 감독을 비난한다면 그래서 넌센스다. 히어로즈 관계자들이 전반기 돌풍은 구단 수뇌부 덕분이고, 후반기 성적 부진은 김 감독 탓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히어로즈 구단은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는 기업구단이 아니라 구단 자체가 기업인 야구전문기업이다. 단순하게 정리를 한다면 성적을 내고 지명도를 높여 광고를 따내야 팀을 운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표 등 구단 수뇌부는 신인 드래프트 때면 현장에 나와 선수를 직접 뽑았다. 선수 트레이드 또한 코칭스태프가 아닌 구단 프런트가 주도했다. 히어로즈 구단 수뇌부는 아마추어 야구 전문가를 넘어 프로구단을 전문적으로 운영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모기업에서 낙하산처럼 내려오는 다른 구단 사장, 단장과는 전혀 성격이 달랐다.

그런데 이번 김 감독 경질을 보면 이 대표 등 히어로즈 구단 수뇌부가 자가당착에 빠진 것 같다. 후반기 경기 운영이 불만족스럽다고, 내년 시즌에도 비전이 없다고 용도폐기를 결정한 그 김 감독을 선임했던 사람이 바로 이 대표다.


더구나 히어로즈는 2009년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의 3년 계약 마지막 해인 지난해 초 덜컥 3년 재계약을 발표해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히어로즈는 "계약 기간에 신경쓰지 않고 안정적으로 팀을 이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기 재계약을 결정했다"고 했다. 그렇게 전폭적인 믿음을 보여주더니, 이젠 돌연 "성적을 낼 수 있는 지도자를 영입하겠다"고 한다.

먼저 야구 전문가를 자처해 온 이 대표와 조 단장이 먼저 자신들의 안목을 자책해야 할 것 같다. '비전이 없는' 지도자에게 4년이나 지휘봉을 맡기고, 더구나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재계약을 해줬으니 말이다.

넥센 구단은 그들이 내세운 성적부진이 감독 경질 이유가 맞다면 그에 앞서 사람의 능력을 보는 자신들의 눈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먼저 팬들에게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이 운영하는 구단이기에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히어로즈는 올시즌 화끈한 야구로 수많은 팬들을 끌어모은 팀이다. 이 대표 등 대주주 몇몇의 팀이 아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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