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외국인 선수, 한국 야구에서 배우고 간다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2-08-31 07:12 | 최종수정 2012-08-31 07:12


KIA 시절이던 지난해 8월28일 SK를 상대로 역투하고 있는 트레비스 블랙클리. 조병관 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2011.08.28/

두산 시절 홈런을 터트린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타이론 우즈. 스포츠조선 DB

국내 프로야구가 외국인 선수 영입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1998시즌 부터였다. 1997년 미국에서 구단들이 한데 모여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를 실시했다. 구단들은 외국인 선수 1명을 영입하는데 1년 평균 10만달러(약 1억1000만원) 안팎이 들었다. 당시만해도 구단들은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야구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 때문에 애를 먹었다. 크게 내세울 것도 없는 메이저리그 경력을 자랑삼아 40만달러(약 4억5000만원) 이상의 터무니없는 연봉을 주장해 계약 직전에서 무산되는 경우도 많았다.

14년이 흐른 요즘은 조금 달랐다. 최근 국내 야구를 접한 외국선수들은 속은 알 수 없었지만 겉으로라도 한국 야구를 존중한다. 한국에서의 경험이 자신들의 야구 실력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SK에 이어 올해는 삼성 선발인 고든은 "한국 투수와 타자들을 통해 내 제구력과 매커니즘이 좋아졌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작년 KIA에서 선발로 뛰었고 지금은 미국 오클랜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트레비스 블랙클리(한국 등록명 트레비스)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2012시즌, 국내 프로무대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은 8개 구단 총 15명(한화만 1명)이다. 다수가 국내 야구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온다. 한국을 다녀갔던 친구 또는 동료들의 얘기나 추천 정도를 듣고 온다. 대개 연봉 20만(약 2억2000만원)~30만달러(약 3억4000만원)를 받는다. 한국야구위원회 규정상 외국인 선수 1명 연봉은 30만달러로 제한돼 있다. 이러다보니 메이저리그에서 이름만 대면 바로 알만한 주전급 선수를 영입하는 건 사실상 힘들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조금 있으면서 트리플A에서 뛰는 선수들이 영입 대상이 될수밖에 없다.

트레비스 처럼 국내 경험을 살려 잘 된 케이스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KIA에서 7승5패(평균자책점 3.48)을 기록했던 그는 올해 오클랜드에선 5승(3패)을 올렸다. 2011년 삼성 선발이었던 저마노도 현재 미국 시카고 컵스에서 선발로 뛰고 있다. 이번 시즌 성적은 2승(4패).

호세 페르난데스, 타이론 우즈, 세스 그레이싱어 등은 일본 야구에서 성공, 돈과 명예를 동시에 가졌다. 2002년 SK 출신 페르난데스(라쿠텐)는 세이부, 라쿠텐, 오릭스 등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10년을 버티고 있다. 한국 원년 외국인 선수였던 우즈는 2003년 두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2008년까지 6년 동안 홈런 240개를 치며 센트럴리그 홈런왕을 3번이나 차지했다. 2005년과 2006년 KIA에서 선발로 뛰었던 세스 그레이싱어는 야쿠르트(2007년 16승), 요미우리(2008년 17승)에 이어 현재 지바 롯데에서 뛰고 있다. 이런 성공 사례 때문에 일본 구단들은 국내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을 예의주시하게 됐다. "한국에서 잘 던지면 일본에서도 통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국내 야구를 접한 외국인 선수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토종 타자들의 선구안과 커트 능력이 좋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타자들보다 더 많이 기다린다. 잘 속지도 않고 삼진을 빼앗기도 어렵다. 또 한국야구는 2000년대 후반부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베이징올림픽 등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이러다보니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 야구를 보는 시각과 자세가 과거와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선수들을 보면서 토종 선수들도 많이 배웠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 온 외국인 선수들의 다수가 경기 전후 웨이트트레이닝을 빼놓지 않았다. 그걸 본 토종들 사이에선 웨이트트레이닝 붐이 일기도 했었다. 이제 많은 국내 선수들이 부상 방지 등을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을 빠트리지 않고 있다.

일부에선 외국인 선수들의 득세로 토종들의 설 자리가 자꾸 준다는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놓는다. 또 외국인 선수를 얼마나 잘 뽑느냐에따라 한해 팀 성적이 좌우되는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스포츠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외국과 소통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현 세태를 감안하면, 외국인 선수 영입을 통해 국내 야구가 더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