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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K' 류현진의 거침 없는 탈삼진 페이스. 한화 입장에서는 마냥 기뻐할 일만도 아니다.
70이닝을 소화하며 기록한 93탈삼진. 9이닝 당 탈삼진이 무려 11.96에 달한다. 2010년 8.74탈삼진/이닝, 2011년 9.14에 비해 상승폭이 크다. 이유가 무엇일까. 얼핏 생각하면 더 강해진 괴물 투수의 진화로도 볼 수 있다. 작년에 덜 던지며(126이닝) 휴식기를 가진데다 아직 시즌 초반이란 점도 가파른 탈삼진 페이스를 설명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1.82의 평균자책점으로 1위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던 2010년에 비해도 올시즌 류현진의 탈삼진 비율은 월등히 높다.
'불펜'은 상대 팀 공격 전략에도 영향을 준다. 좋은 타자들은 1경기 내에서도 상황과 흐름에 따라 공격 패턴을 수시로 바꾼다.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공격하기도 하고, 가급적 공을 오래보는 지공을 택하기도 한다. 때론 타격코치 등 벤치에서 전체적으로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통상 류현진같은 '닥터K'가 등판하면 상대 타자들은 이른 볼카운트에 적극적 공격을 펼친다. 패스트볼이든 브레이킹 볼(류현진의 경우 주로 체인지업)이든 딱 하나를 마음 속에 정하고 노리던 그 공이 보이면 스윙한다. '게스 히팅'이 힘들어지는 투스트라이크 이후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상책.
하지만 '류현진 이후'를 책임질 불펜이 약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투구수를 늘려 경기 후반을 기약하기도 한다. '최동원 vs 선동열' 시대가 아닌 다음에야 150~200개씩 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매 이닝 2사가 될 때까지 최대한 초구 공략을 자제하면서 투구수를 늘려가면 6~8회에 슈퍼 에이스를 끌어내릴 수 있다. 물론 그 전제는 후반에 승부를 걸어볼만큼 타이트한 접전이 이어지고 있어야 한다. 투스트라이크 이후 승부가 늘어나니 탈삼진도 늘어난다. 타자가 공을 칠 수 있는 볼카운트 상황은 총 12개. 투스트라이크 이후 상황은 12가지 중 33%인 4가지다. '스포츠 투아이' 통계에 따르면 올시즌 류현진의 투스트라이크 이후 승부는 무려 59.2%(167/282). 상황적 확률의 두배에 달한다. 2010년 52.4%(396/756), 2011년 51.3%(267/520)에 비해 늘었다. 상대 타자들이 초구 공략을 자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삼진을 당할 위험이 커지더라도 초·중반 류현진의 투구수를 최대한 늘려 후반을 기약할만한 타이트한 접전 상황이 많았다는 뜻도 된다. 80%의 퀄리티 스타트에도 불구, 고작 2승(3패)에 그치고 있는 이유. 류현진은 올시즌 유독 타선지원을 받지 못했다. 10경기 중 3득점 이하 지원이 7경기에 달한다.
류현진은 5월의 마지막 날이던 31일 대전 삼성전에서 7이닝 동안 29타자를 상대로 119개를 던졌다. 1타자 당 4.1개의 투구수. 탈삼진을 무려 13개나 솎아냈다. 하지만 더 던질 수는 없었다. 2-2 동점이던 8회부터 바티스타에게 넘겼다. 바통을 넘겨 받기 무섭게 한화 마무리 투수는 1아웃을 잡는 동안 2볼넷-2안타로 너무나 쉽게 결승점을 내줬다. 삼성이 7이닝을 꾹 참고 기다리던 '그림'이었다.
바티스타가 '가장 불안한 마무리 투수'로 남아있는 한, 한화 타선의 박한 득점지원이 계속되는 한 류현진에 대한 상대 타자의 '지공'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덩달아 괴력의 탈삼진 행진도 쭉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한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에 대한 기대감. 그 뒤에는 '류현진 고립화'라는 숨은 변수와 한화의 속앓이가 공존하고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