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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트링의 대습격, 박찬호, 이범호, 맷 켐프까지…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2-05-31 16:53


지난해 8월7일 인천 SK전에서 주루 플레이 도중 오른쪽 햄스트링이 파열된 이범호. 악령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허벅지 뒷쪽 근육과 힘줄인 햄스트링(hamstring). 4개의 근육으로 이뤄진 햄스트링은 자동차로 비유하면 브레이크다.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거나 방향을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관성의 힘에 맞서 동작을 제어하는 기능. 파열 위험이 크다. 격한 뜀박질과 방향 전환 각도가 클수록 위험성이 커진다.

야구의 야수는 경기 중 축구, 럭비, 농구, 하키 등에 비해 뛰는 절대양은 적다. 하지만 강도가 세다. 주루 시 단거리를 최대한 빠르고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곡선 주행해야 한다. 마치 구불구불 산길을 최대 속도로 내려오는 자동차의 브레이크 같다.

수비할 때도 빠르게 날아오는 타구에 대해 정지 동작에서 출발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움직임을 일으켜야 한다. 몸에 무리를 줄 수 있는 순간 반응이다. 이 때문에 햄스트링 부상자가 심심치 않게 속출한다.

햄스트링은 매우 골치아픈 부위다. 야구 선수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부상 부위 중 하나다. 회복이 오래걸리고 재발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주위 근육에 탈을 일으키는 전염성도 강하다.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시차를 두고 반대쪽 햄스트링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50대50으로 제어하던 브레이크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밸런스가 무너지면 성한 쪽 브레이크에 과부하가 걸리기 마련이다. 균형이 깨지면서 허리나 종아리, 발목 등 주변으로 통증이 번지는 경우도 흔하다.

KIA 이범호는 지난해 8월7일 인천 SK전에서 홈으로 들어오다 포수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갑작스레 멈추는 과정에서 오른쪽 햄스트링이 파열됐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이번 시즌 초에는 반대편인 왼쪽 햄스트링에 통증을 호소했다. 1군 복귀를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30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오른쪽 정강이 통증으로 선발 출전하지 못했다. 햄스트링 부상에서 오는 전형적인 전염성 부상형태다. 햄스트링은 이범호 개인을 넘어 KIA의 올시즌 행보에 드리운 불안요소다.


햄스트링 악순환을 경험한 박찬호(오른쪽)는 경기전 스트레칭 등으로 철저히 대비하는 습관이 누구보다 철저하다. 지난 18일 SK와의 대전경기에 앞서 하나마스 트레이닝 코치와 몸을 풀고 있는 모습.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2.5.18
햄스트링은 투수에게도 온다. 통상 마운드를 강하게 차는 축족에 탈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화 박찬호다. 텍사스 이적 첫해인 2002년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캠프에서 오른쪽 햄스트링을 다친 이후 하체 밸런스가 흐트러지면서 연이은 부상과의 전쟁을 벌어야 했다. 2003, 2004년에 옆구리, 허리 통증 등이 잇달아 찾아오며 텍사스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햄스트링이 없었다면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성적은 훨씬 화려해 졌을런지 모른다.

잊혀질만 했던 햄스트링 부상은 오른쪽과 왼쪽을 수시로 오가며 박찬호를 괴롭혔다. 지난 2009년 필라델피아 시절 시범경기 도중 왼쪽 햄스트링에 통증을 느꼈다. 확실한 셋업맨으로 활약하던 그는 그해 시즌 막판인 9월17일 워싱턴전에서 또 다시 햄스트링 통증을 느꼈다. 2010년 뉴욕 양키스로 옮긴 박찬호는 4월15일 오른쪽 햄스트링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올해도 나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햄스트링 부상이 찾아왔다. 박찬호에게 햄스트링 부상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셈이다. 일본 오릭스로 깜짝 진출한 지난해 역시 햄스트링에 발목이 잡혔다. 1군 복귀전(6월30일 세이부전) 이틀 앞둔 시점에 러닝 도중 왼쪽 햄스트링이 파열됐다. 일본 생활은 사실상 거기까지였다. 한화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현재도 그는 햄스트링 재발 방지에 같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15일짜리 부상자명단에서 복귀한지 불과 2경기만에 다시 왼쪽 햄스트링 통증이 재발된 다저스 간판타자 맷 켐프. 출처=메이저리그 홈페이지
LA 다저스 중견수 맷 켐프는 31일(이하 한국시간) 밀워키와의 홈경기에서 1회말 공격을 마친 직후 덕아웃에서 자신의 배트를 무릎에 대고 부러뜨렸다. 롯데와 한화에서 뛰던 외국인 선수 가르시아를 연상케 하던 장면. 내셔널리그 최고 타자 반열에 오른 다저스의 슈퍼스타를 분노케 한 것은 햄스트링의 재발이었다. 1회 2사 후 볼넷으로 출루한 그는 후속 안드레 이디어의 2루타 때 전력질주로 홈을 밟아 선취 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3루를 도는 순간 보름 전 그를 부상자 명단에 올렸던 왼쪽 허벅지 햄스트링에 통증을 느꼈다. 발걸음이 느려졌고 2회초 수비부터 토니 그윈이 켐프 대신 중견수로 나섰다. 켐프는 6월1일 MRI 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켐프는 지난 14일 콜로라도전에서 1루로 전력질주하다 왼쪽 햄스트링 통증을 느꼈다. "며칠 쉬면 된다. 결코 부상자 명단에 오를 일은 없다"며 출전 강행 의지를 불태웠던 그는 결국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이날 경기는 켐프 복귀 후 2번째 경기였다. '햄스트링 악순환'의 전조를 보이고 있는 맷 켐프(31일 현재 0.355, 12홈런, 28타점, OPS 1.163). 내셔널리그 서부조 1위를 달리고 있는 LA다저스의 올시즌 운명까지 걸린 중대 변수, 켐프의 햄스트링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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