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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히트노런은 오늘 뿐이다. 에이스의 상징 18번의 무게는 1년간 활약해 인정받겠다."
스기우치는 9회초 2사까지 단 한 차례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일본프로야구 사상 18번째 퍼펙트게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27번째 상대는 대타 나카시마. 스기우치는 볼카운트 1B2S로 나카시마를 압박했다. 관중석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스트라이크 하나면 퍼펙트게임이 달성되는 상황이었다.
'안타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스기우치는 연속해서 볼 3개를 던져 이날 첫번째 출루를 허용했다. 보통 퍼펙트게임이나 노히트노런 등 대기록이 깨졌을 때 투수는 급격히 흔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기우치는 다음 타자 히지리사와를 9구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108구째 공은 몸쪽 꽉 찬 스트라이크. 일본프로야구 사상 75번째 노히트노런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스기우치는 경기가 끝난 뒤 "물론 퍼펙트게임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이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퍼펙트게임을 무산시킨 볼넷 상황에 대해서는 "풀카운트에서 무책임하게 한가운데로 던질 수 없었다. 비록 안타가 되어도 이길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라며 "낙담은 없었다. 아직 노히트노런이 남아있었고, 안타를 맞아도 완봉승이 있었다"고 밝혔다.
스기우치는 지난해 10월 왼 어깨를 다쳤다. 투수의 생명인 어깨나 팔꿈치 부위에 부상이 온 건 처음이었다. 투구폼이 문제였다. 스기우치는 일본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상을 받았던 2005년의 폼과 현재의 폼을 비교했다. 팔꿈치 높이를 가장 좋았던 때로 수정하는 작업을 거쳤다.
상대가 라쿠텐의 에이스 다나카인 점도 노히트노런을 이끌어내는 데 한몫했다. 스기우치는 "지금까지 다나카를 이긴 적이 없었다"며 "그래서 처음부터 강하게 던졌다. 오늘은 체인지업이 좋지 않다고 판단돼 직구와 슬라이더만 구사했다"고 말했다.
스기우치는 지난 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해 소프트뱅크에서 요미우리로 이적했다. 이적 후 곧바로 에이스의 상징인 등번호 18번을 부여받았다. 스기우치는 "노히트노런은 오늘 만의 일이다. 앞으로 18번의 중량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할 수는 없다. 1년간 활약해 인정받아야 한다"며 웃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