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고 피칭 박찬호, 그 비결을 살펴보니...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2-05-18 13:23


두산과 한화의 주중 3연전 마지막날 경기가 17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5대1 승리로 경기를 마무리한뒤 승리투수가 된 박찬호가 한대화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2.05.17/


"박찬호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17일 두산-한화전을 생중계한 이효봉 XTM 해설위원은 박찬호의 피칭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투수 출신인 이 위원이 볼 때에도 효율적인 투구수 관리, 불혹의 나이를 뛰어넘어 전력을 쏟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이 위원 뿐만 아니라 모든 야구인들의 표현대로 박찬호는 이날 국내 복귀 이후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

'명불허전'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한 박찬호는 초대형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에게도 흥미 만점의 볼거리를 선물하며 야구흥행 지수를 한껏 끌어올린 느낌이다.

박찬호가 이처럼 최고의 모습을 선사하게 된 숨은 비결은 지능적인 플레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장내에서는 맞춤형 피칭으로, 장외에서는 센스넘치는 비법 공개로 자신의 최고 피칭을 완성했다.


'지능의 대가' 박찬호였던 것이다.

맞춤형으로 잠실구장을 접수하다

17일 두산전을 시작하기 전 정민철 투수코치는 박찬호의 호투를 예견하는 힌트를 줬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풍부한 박찬호가 광활한 잠실구장의 특성을 활용한 맞춤형 피칭을 할 것이다." 이전까지 박찬호는 청주, 광주, 대구구장 등 타구 비거리에 약한 경기장에서만 6경기를 치렀다. 홈런 등 장타에 대한 경계심때문에 철저하게 땅볼 유도 위주로 맞춤형 피칭을 해왔다. 정 코치는 "아무래도 좁은 구장에서는 실투에 대한 부담 때문에 컨트롤에 신경쓰다 보면 투구수가 많아진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대형 경기장에 익숙한 박찬호가 잠실구장에 서면 외야를 믿을 수 있고 한결 과감하게 승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그랬다. 박찬호는 이날 복귀 이후 최다이닝(7이닝)을 소화하면서 94개 밖에 던지지 않았고 5탈삼진 1볼넷 1실점으로 막았다. 6안타를 허용하며 실점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공격 피칭 정면 대응으로 막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잠실구장에 맞게 카멜레온처럼 변신한 피칭이다. 박찬호는 이날 플라이 5개, 땅볼 7개를 유도했다. 땅볼 대비 플라이 비율이 1.40으로 기록됐다. 이전 6경기에서 땅볼 대비 플라이 비율은 2.09(땅볼 46개, 플라이 22개)였다. 이 수치는 KIA 앤서니(2.15)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철저하게 땅볼 유도형이었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서 기록한 땅볼-플라이 비율(1.51)이 데뷔 후 가장 높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좁은 구장에서의 생존전략을 얼마나 연구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잠실구장에서는 경기장의 특성에 맞춰 플라이 유도에 지능적으로 치우쳤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시절 땅볼보다는 플라이를 더 많이 유도하는 투수였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17년간 통산 땅볼-플라이 비율이 0.79였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땅볼 -플라이의 비율이 보통 1.0~1.2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플라이 타구를 많이 유도하는 투수였던 셈이다. 과거에 장점으로 누렸던 플라이 유도 특성을 잠실구장에서 살짝 꺼내든 것이다. 여기에 박찬호는 94개 투구 가운데 직구(32개), 슬라이더(26개) 외에 체인지업과 커브(이상 14개) 등 변화구 비율을 높이며 능란한 볼배합 솜씨를 선보였다. 19개의 아웃카운트 가운데 13개를 변화구로 잡았다. 최고 시속 149㎞에 달할 정도로 마음놓고 던질 수 있었으니 변화구도 잘 먹혔다.

센스있게 회장님을 끌어들이다

박찬호는 장외에서는 눈치 빠른 센스쟁이였다. 두산전이 끝난 뒤 구단 프런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방송 인터뷰에서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었다. 박찬호가 이날 두산전에서 승리하게 된 숨은 비법같았다. '회장님의 기를 팍팍 받아서 잘 던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회장님 경기장에 자주 오셨으면 좋겠네요.' 이런 요지의 내용이었다. 구단주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기를 받은 덕분에 힘이 더 났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지난 16일 잠실구장을 전격 방문해 선수단을 격려했다. 당시 김 회장은 특히 박찬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따로 여러차례 덕담을 하는 등 남다른 관심을 표시했다. 김 회장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의 각오로 우승하자"며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이 과정에서 기를 받았고 이튿날 승리까지 거둔 박찬호는 김 회장을 향해 재치있게 화답했다. '회장님의 기를 받아서 선수들이 힘을 내고 있으니 앞으로 경기장을 자주 방문해서 많은 격려를 해달라'는 메시지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박찬호이기에 가능한 넉살이다. 김 회장은 지난해 8월 7일 잠실 LG전을 방문한 이후 이번에 9개월 만에 야구장을 다시 찾았다. 김 회장이 지난해 야구장을 방문한 것은 2003년 올스타전 이후 8년 만이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이번 두산전 방문은 이례적으로 잦은 행보였던 셈이다. 박찬호는 이런 김 회장에게 더 자주 와달라고 초청했다. 야구를 통한 그룹 이미지를 높일 수 있고, 선수들은 사기를 얻고. 김 회장과 선수단 모두 손해 볼 게 없다는 걸 잘 아는 박찬호다. 역시 지능적이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