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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소프트뱅크, 1.20초 전쟁이다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1-11-29 11:25


1.20초란 시간은 도루와 관련해서 큰 의미가 있다. 삼성이 소프트뱅크와의 아시아시리즈 결승전에서 신경써야 할 퀵모션 속도다. 지난 25일 삼성이 소프트뱅크와의 예선전에서 2회에 아카시에게 2루 도루를 내주고 있다. 대만=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도루를 내주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대만에서 진행중인 아시아시리즈에서 '1.20초'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삼성이 소프트뱅크와의 예선 경기때 도루를 무려 7개나 허용하며 속수무책으로 0대9 패배를 당했기 때문이다. 삼성 입장에선 초반에 끌려가면 경기를 버리는 전술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로 하여금 너무 마음놓고 휘젓게 만들었다는 얘기도 분명 나왔다.

소프트뱅크와 결승전에서 다시 붙게 된 삼성은 어떻게든 상대 기동력을 둔화시켜야한다. 삼성이 올시즌 팀도루 158개로 전체 1위에 올랐다. 소프트뱅크 역시 팀도루 180개로 일본프로야구 양대리그를 통틀어 압도적인 1위였다.

1.20초, 도루의 첫번째 책임은 투수

삼성이 소프트뱅크와의 예선전때 도루 7개를 허용한 것을 놓고 포수 진갑용을 뜨악한 시선으로 쳐다본다면 그건 '야구 하수'의 모습이다. 도루는 근본적으로 투수의 책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포수가 제아무리가 어깨가 강해도 투수가 느릿느릿 던지면 헛일이다. 그래서 퀵모션의 중요성이 늘 강조된다. 삼성이 철저하게 당한 것도 그날 등판한 투수들의 퀵모션이 좋지 않았던 게 첫번째 이유다.

1년전 코치 몇명, 모 해설위원과 함께 술자리에서 퀵모션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1.30초가 과연 유효한 퀵모션의 기준이냐를 놓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투수의 퀵모션이 1.30초 정도면 괜찮은 것으로 쳐줬기 때문이다. 세트포지션에서 자유족(足)을 들어올리는 순간부터, 공이 포수 미트에 박히는 순간까지를 바로 퀵모션이라 한다. 포수의 평균적인 능력이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투수의 퀵모션이 1.30초 이내일 경우 도루를 저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현장 코치들은 "지금은 그 정도로 안 된다. 퀵모션이 1.20초는 돼야 수비측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적어도 1.20초대로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통 포수가 공을 잡아 2루 송구동작을 한 뒤 태그가 이뤄지기까지 2.0초 안팎이 소요된다. 결국 도루를 잡아내기 위해선 과거엔 3.30초란 시간이면 됐지만, 지금은 3.20초 가까이 근접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몇년간 SK와 두산이 빠르고 조직적인 플레이를 정착시켰고, 다른 팀들이 이에 대응하면서 나온 결과다.


미국 용병 투수가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훈련받는 게 퀵모션이다. 지난해 두산에서 뛴 히메네스처럼 빠른 투수도 있지만 대체로 문제점이 발견된다는 얘기다. 메이저리그에선 뛰는 선수만 뛰기 때문에 퀵모션의 중요성이 덜한 편이다. 일본프로야구가 퀵모션을 가장 중시한다. 일본 투수들의 투구폼은 대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빠르다. 한국프로야구는 일본에 비해선 전반적으로 약간 느리다.

두번째 책임, 포수

물론 포수의 어깨가 중요하다. 국내 포수들이 공을 잡아 2루에 송구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천차만별이다. 근본적으로 어깨가 약하거나 아픈 포수는 중용되기 어렵다.

어깨가 아프지 않더라도 송구 습관이 잘못돼 있다면 또한 문제다. 몇몇 포수들은 2루에 공을 던질 때 '타탁' 하면서 팔이나 몸이 한번 튕겨지는 스타일을 보인다. 과거 아팠을 때 잘못 굳은 습관이 남아있는 사례다.

포수도 사람이다. 강한 송구를 할 때마다 '또 아프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송구 동작이 이상한 방향으로 굳어진다. 매번 한번씩 주춤한 뒤 던지는 포수도 있는데 역시 부상 경력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로 이 멈칫 하는 동작이 주자를 살려주는 이유가 된다. 공을 받자마자 거의 동시에 미트에서 공을 꺼내는 동작은, 포수들이 자나깨나 받는 훈련중 하나다. 이 동작도 빨라야 한다. 포수들이 가끔 미트 형태가 아닌, 평평한 '판때기' 형태의 도구를 들고 훈련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도루와 포수의 책임관계에 있어 흥미로운 분석도 있다. 도루저지율이 높은 포수가 반드시 투수에게도 믿음직한 포수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포수에게 도루저지율은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그걸 위해선 바깥쪽 높은 직구를 요구하는 게 편하다. 낮은 공을 받아 던지는 것 보다는 편안한 바깥쪽 높은 코스가 2루 송구에 유리하다.

그런데 포수가 지나치게 이같은 요구를 하게 되면 투수가 괴롭다. 투수가 머릿속으로 그려놓은 구질 승부를 포기해야하기 때문이다. 배터리코치가 경기후 술한잔 하면서 투수코치에게 "미안했다"고 말한다면, 그날 경기에서 이같은 장면이 많았다는 걸 의미한다. 야구가 단체종목이지만 포지션별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힐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세번째 변수, 투구습관

도루 능력이 있는 1루주자에겐 두가지 선택이 있다. 뛸 것인가, 말 것인가. 그걸 결정하기 위해선 마운드 위의 투수 움직임을 잘 살펴야한다. 투수에겐 견제구를 던질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권이 있다. 주자 입장에서 이 판단이 엇갈리면 몇걸음 가지도 못하고 견제구에 걸려 협살당하게 된다.

반면, 주자가 투수의 습관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프로야구 현장에선 '쿠세'라는 일본말이 흔하게 쓰이는데 결국엔 습관이나 특정 동작을 의미한다. 어떤 투수가 세트포지션에서 포수에게 던지려고 할 때는 상체가 꼿꼿한데, 견제를 준비하고 있을 땐 상체가 약간 앞으로 기울어지는 경우가 있다. 주자는 적절히 리드를 잡다가 투수가 꼿꼿한 폼으로 다리를 올리는 순간 냅다 2루로 뛰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

전력분석원들이 비디오 자료를 통해 투수의 습관을 뽑아내기도 하고, 혹은 선수들이 스스로 잡아내기도 한다. 중요한 건 잘 모르는 상대라도 경기중에 즉각적인 분석이 가능할 때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같은 정보를 머릿속에 잘 담아두는 1루코치는 주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정규시즌을 치르다보면 전혀 뛰지 못할 것 같은 선수가 갑작스레 도루를 시도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공하는 장면이 가끔 나온다. 매번 그런 건 아니겠지만, 1루코치가 팁을 준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수 파트에선 "상대의 투구습관 파악을 역이용하라"는 주문도 나온다. 그런데 이건 쉽지 않다. 경기에 몰입하다보면 습관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코치들은 평소 훈련때 특정 습관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삼성과 소프트뱅크의 결승전에서도 분명 도루를 막기 위해 양팀이 치열한 심리전을 펼칠 것이다. 양팀 투수 전력상 연속안타가 나오기 어렵다고 본다면, 결국 누가 한 베이스를 더 가느냐가 승부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1,2루간 거리는 27.43m. 딱 한걸음의 차이가 승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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