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오승환 돌직구 타석 체험기. `맞으면 죽는다.'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1-11-21 14:20 | 최종수정 2011-11-21 14:29






삼성 오승환이 20일 오키나와 아카마구장에서 열린 자체 청백전에 앞서 불펜피칭을 할 때 기자가 타석에 서는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오승환이 포심패스트볼을 던지기 위해 피칭 동작을 할 때 구단 운영팀 관계자가 휴대폰 카메라로 이 광경을 촬영했다.
오승환의 '돌직구'를 타석에서 체험했다. 한마디로 끔찍한 경험이었다. 대포알처럼 지나가는 직구를 보면서 '맞으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체험이 끝난 뒤에도 상당한 흥분과 함께 손이 약간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배려해준 삼성 류중일 감독과 오승환, 구단측에 우선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삼성의 오키나와 마무리캠프를 취재하면서 반드시 해보고 싶은 체험 목표가 있었다. 최고의 마무리투수 오승환의 포심패스트볼을 타석에서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그거 뭐하러 할려고", "그러다 맞으면 책임 못져요" 하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민간인' 입장에서 대체 오승환의 직구가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꼭 확인해보고 싶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

마무리캠프를 치르고 있다 해서 투수가 정규시즌 때처럼 자주 피칭을 하는 게 아니다. 지난 9일 오키나와 캠프에 합류한 오승환은 그후 아시아시리즈에 대비한 몸만들기를 진행했다. 19일에 불펜피칭을 실시했는데 그날 비가 오면서 스케줄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체험 기회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20일 삼성은 오키나와 아카마구장에서 자체 청백전을 실시했다. 오키나와에서 치르는 마지막 청백전이었다. 오승환은 청팀 세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찬스였다. 보통 등판 1이닝 전부터 불펜에서 몸을 푼다. 이때도 전력 피칭을 한다. 야구장 한켠의 불펜에서라면,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고 오승환의 직구를 체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류중일 감독이 흔쾌히 승낙했다. 비록 청백전이긴 하지만 '민간인'이 경기중에 불펜에서 투수 공을 체험하도록 허락한 건 엄청난 배려다. 오치아이 투수코치도 고개를 끄덕이며 해보라고 했다. 구단 직원에게 휴대폰 카메라를 부탁한 뒤 불펜쪽 그물망 뒤에 섰다. 잠시후 공수 교대 타임. 드디어 오승환을 상대로 타석에 섰다.


맞으면 죽는다

직구 3개를 체험하기로 오승환과 약속했다. 불펜포수 전진형씨가 타석에 선 기자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왜 웃는거지'라고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의미를 알고 있으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코치가 "오승환이 맞힐 지도 모른다"면서 겁을 준다. 설마…. 하지만 순간적으로 공포감이 밀려왔다. 오승환은 2005년 데뷔후 통산 1521타자를 상대해 6560개의 공을 던졌다.

그가운데 사구, 즉 몸에맞는 공 4개를 기록했다. 굉장히 적은 수치다. 바깥쪽 위주로 강력한 포심패스트볼을 던지는 스타일이라 사구가 적었을 것이다. 체험 이전부터 '타자 기준으로 0.26%의 확률에 설마 내가 해당되겠는가'라고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유니폼이 아닌 사복을 입은 '민간인'이기에 오승환이 오히려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곁에서 코치가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

전진형씨가 홈플레이트가 박힌 땅 옆에 스파이크로 선을 그었다. 타석이다. 드디어 오승환의 '돌직구'를 맞닥뜨리는 순간이다.

공포, 그 자체였던 공 4개

"자, 이제 갑니다." 오승환이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초구다. 나름 타이밍에 맞춰 스윙하는 시늉이라도 해보려고 덤벼들었다. 그런데. '쾅!'

응? 뭐가 지나가긴 했다. 대포알이 지나간 것 같았다. 공은 이미 포수 미트에 박혀있었다. 약간 바깥쪽 직구였다. 조금 전까지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덤벼볼려고 했던 마음이 싹 가셨다. 야구기자들은 평소 취재를 하면서 불펜피칭하는 투수의 모습을 코치들과 함께 뒤에서 지켜볼 때가 많다. "야, 저 투수 공 좋은데요. 쭉쭉 들어가네요"라며 아는체를 하곤 했지만, 타석에 서보니 이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2구째를 던지기에 앞서 오승환은 "자, 이제 몸쪽 갑니다"라고 말했다. 대체 왜! 굳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몸쪽으로 던진다는걸까. 나도 모르게 주춤주춤 발을 몇㎝ 뒤로 움직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날아온 2구.

이번엔 초구보다 더 가운데쪽이었다. 역시 '쾅' 하는 소리가 들린 것처럼 느껴졌다. 공이 날아오는 게 안 보였다. 그냥 오승환이 팔스윙을 하고 곧바로 등뒤 미트에서 소리가 났다. 하지만 몸쪽 공은 아니었다. 오승환의 장난기가 발동된 것이다.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오승환이 "이번엔 진짜 몸쪽입니다"라고 다시 말했다. 그러더니 왼손의 글러브를 들어 펜스쪽으로 휘휘 내저었다. 맙소사, 이번엔 진짜다. 포수 전진형씨가 앉은 채로 움직이면서 내쪽으로 착 붙었다.

그리고 3구째. 최고의 경험인 동시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순간이었다. 엉거주춤 서있는 기자의 무릎 위 높이, 몸쪽으로 대포알 같은 공이 날아들었다. 가만히 서있어도 맞을 공은 아니었겠지만, 몸은 본능적으로 뒤로 휙 빠졌다. 그리고 입에선 "으악!"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식은땀이 흐르는데 오승환과 코치는 웃고 있다.

본래 3개를 체험하기로 했지만 오승환이 4구째 슬라이더를 한번 더 던졌다. 낮은 코스였다. 이미 '정신줄' 놓고 있던 기자는 멍하니 서있었을 뿐이다. 체험이 끝난 뒤 전진형씨에게 어느 정도 스피드였냐고 물어봤다. "143㎞ 정도 나왔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승환은 실전에선 147㎞ 이상을 던지는 투수다. 올해 최고 152~153㎞를 기록하기도 했다. 오승환의 공을 건드리는 타자들이 더 놀랍게 느껴졌다.

체험 뒤, 더 무서웠던 오승환의 얘기

체험을 마친 뒤 야구장 안쪽 사무실로 들어가 구단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눴다. 10분 정도 지났음에도 손이 가볍게 떨리고, 목소리도 진정되지 않는 게 느껴졌다.

잠시후 오른쪽 팔에 아이싱을 하고 있는 오승환을 트레이너실에서 만났다. "야구선수가 아닌, 민간인에게 던지는 게 맞힐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았는가"라고 질문했다.

오승환은 "프로 선수는 내가 잘못 던져도 피할 수 있는데, 오늘 같은 경우는 (기자가) 못 피할테니까 그게 약간 염려되기도 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얘기해줬다. 이 얘기를 들으니 한번 더 식은땀이 흘렀다.

이날 일부러 배트를 들지 않고 타석에 섰다. 완전 무방비 상태로 오승환의 공을 체험하는 게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좋은 경험을 했다. 한편으론, 타자에게 배트가 얼마나 든든한 친구인가에 대해서도 느끼게 됐다.

2005년 삼성의 괌 전지훈련때 선동열 전 감독이 기자를 포함한 취재진 3명에게 공을 10개씩 던져주며 쳐보라고 한 적이 있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래였지만, 당시 선 전 감독은 130㎞대 초반의 공을 던졌다. 그때 선 전 감독의 릴리스포인트는 기괴할 정도였다. 공을 놓는 지점만 놓고보면 공이 땅바닥으로 패대기쳐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공은 그 높이를 그대로 유지하며 똑바르게 날아왔었다.

이번에 경험한 오승환의 직구는, 릴리스포인트는 선 전 감독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현역 최고 마무리투수답게 직구 위력은 끔찍한 수준이었다. 미사일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코치가 지나가며 한마디 건넸다. "그러지 말고 다음 기회엔 아예 몸에 맞아보는 걸 체험하는 건 어때?"

"오래 살고 싶다"고 답했다.


오키나와=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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