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원하늘숲길트레킹

스포츠조선

이번 KS는 흥행영화 아닌 명품영화다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1-10-28 11:22


이번 한국시리즈는 독특하다. 세세한 플레이를 놓고 보면 상당히 품질이 높은 시리즈다. 하지만 흥미는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팀 모두 특별한 실수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이 2차전까지 2연승을 거뒀다. 그 과정에서 스코어 역전 상황이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겨우 2차전이 끝났을 뿐인데, 이제 거의 모든 야구관계자들이 '삼성이 과연 한번은 지고 우승할 것인가'를 얘기하고 있다.

케네디 스코어의 의미

야구에서 8대7의 스코어를 흔히 '케네디 스코어'라 부른다.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야구에서 가장 재미있는 스코어가 8대7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케네디 스코어'란 표현이 실제 있었던 말인지 훗날 지어낸 이야기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중요한 건 8대7이라는 점수는 분명 야구팬들에게 인기를 끌만한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점수가 많이 나면 수준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경기 시간도 오래 걸린다. 점수가 너무 적게 나면 경기가 극도로 조용하게 전개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팬들은 적당한 수준에서 양 팀이 물고뜯기를 바라는데, 8대7 정도가 적당하다는 얘기다.

8대7이란 스코어가 나오려면, 대부분 경기 중간에 역전과 재역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팬들이 흥미를 갖고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이번 한국시리즈 1차전에선 2대0, 2차전에선 2대1이란 점수가 나왔다. 경기 내용은 박빙이었지만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격랑이 인 것은 2차전 8회 정도가 유일했을 것이다.

실수가 없다

2차전까지 양팀 모두 실책을 2개씩 기록했다. 하지만 그 실책이 점수로 연결되진 않았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보다는 수준 높은 디펜스가 자주 나와 눈길을 끌었다.


SK 2루수 정근우는 1,2차전에서 환상의 수비를 보여줬다. 다이빙캐치를 했고, 텍사스 히트성 타구를 전력질주로 잡아내기도 했다. 보통 이같은 호수비가 등장하면 SK가 그후 점수를 뽑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삼성은 강한 투수력으로 추격을 뿌리쳤다. SK는 패했지만 정근우의 수비는 환상적이었다.

삼성 3루수 박석민도 명품 수비를 보여줬다. 2차전 7회초 2사 1루에서 정근우가 3루쪽으로 타구를 날렸다. 라인선상에 붙어 수비하던 박석민은 타구를 재빨리 따라갔다. 몸이 거의 왼쪽으로 제껴질 것 같은 자세로 타구를 잡았다. 그후 1루로 원바운드 송구를 해서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거의 투바운드가 될 뻔 했다.

처음엔 실수처럼 보였지만 그게 아니었다. 자세가 흐트러진 상태라 평소처럼 세게 던지려 했다면 되려 공이 빠졌을 수 있다. 처음부터 힘 빼고 방향성을 중시해 툭 던진 것이다. 경기 전에도 박석민은 원바운드 송구를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실전에서 침착하게 써먹었다.

이처럼 좋은 플레이가 속출하고 있다. 양팀 선수들의 집중력이 극대화된 상태라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결정적인 장면에서 실수가 거의 없으니 게임 흐름에 큰 변화가 생기질 않고 있다. 이같은 면이 팬들에겐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명품 영화와 흥행 영화의 차이

사실 야구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들은 이번 한국시리즈 1,2차전을 명품 게임으로 바라볼 것이다. 양팀 투수진이 보여주는 최고의 노력, 2차전 8회에 삼성 중견수 이영욱이 보여준 환상적인 미사일 홈송구 등 기술적으로 칭찬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품이 반드시 재미로 연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월남전이 주요 모티브가 된 영화 가운데 '지옥의 묵시록'과 '람보'가 있다. 영화사적으로 '지옥의 묵시록'은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 명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재미있어 죽겠다"고 말하는 관객은 별로 없다. 분명 전쟁영화인데 전투 장면이 드물고 스토리가 다소 난해하기 때문이다.

'람보' 역시 1편은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후 시리즈가 비평가들로부터 명품이란 얘기를 듣진 못했다. 반대로 일반 팬들에겐 큰 인기를 끌었다. 단순명쾌한 내용에 화끈한 액션도 자주 등장한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지옥의 묵시록'에 가까운 편이다. 점수가 너무 적게 나고 있다. 치명적인 실수 혹은 그에 따른 '희생양'도 나오지 않고 있다. 팬들이 안줏거리 삼을만한 인물 혹은 장면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수비수의 동작 하나, 외야수의 시프트 하나가 모두 톱니바퀴 돌아가듯 깔끔하다. 인내심이 약간 필요하겠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경기를 감상한다면, 이번 한국시리즈의 품질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