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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간 얼굴 못볼걸 생각하니…."
'근육남' 이양기를 '순정남'으로 만든 이는 특급 마무리 용병 바티스타(31)였다.
이양기는 이에 부응해 11회말 무사 만루에서 끝내기 적시타로 피말리는 승부를 4대3 역전으로 매조지했다.
알고보니 '절친' 둘이서 다 해먹은 것이었다. 이양기와 바티스타는 팀내에서 대표적으로 친한 동료다. 바티스타가 으뜸으로 이양기를 꼽을 정도다.
이들이 친해진 계기가 흥미롭다. 국민 먹거리 돼지 목살이 이들의 우정을 맺어준 징검다리였다.
지난 7월 바티스타가 처음 입단했을 때, 이양기는 대전에서 자주 가는 고깃집에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바티스타를 초대했다.
"한국생활이 처음인데다 가르시아와 달리 내성적인 편인 바티스타가 외로울 것 같아서 적응하도록 도와주고 싶었다"는 게 이양기의 설명이다.
이양기의 추천으로 목살 구이를 처음 먹어 본 바티스타는 그 맛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이후 바티스타는 1주일에 한두 번은 빠짐없이 목살을 함께 먹으며 '목살 회동'을 갖게 됐다.
결국 바티스타가 현재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한국음식은 목살이 됐다.
이양기는 영어가 능통하지 않지만 바디랭기지로 비슷한 또래의 바티스타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로 발전했다.
바티스타는 원정경기를 가면 이양기를 항상 졸졸 따라 다닌다. 간혹 우천취소되거나 경기가 일찍 끝나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그 지역의 가볼 만한 명소를 구경하고 싶은데 이양기 만한 가이드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서울 이태원도 이양기 소개로 알게 됐고, 향수병도 모르고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양기가 끝내기 안타를 친 뒤 '몰매 세리머니'를 당할 때도 바티스타는 승리를 챙겨준 이양기에게 "Thank you"를 연발하며 더 열심히 '사랑의 매'를 날렸다. 그래도 다른 선수들이 덕아웃으로 향한 뒤 끝까지 남아 이양기를 챙겨준 이는 바티스타였고 라커룸에 들어와서도 연신 감사인사를 했다.
이양기는 "오넬리, 데폴라 등 한화를 거쳤던 용병들도 모두 좋은 친구들이지만 바티스타는 유독 착한 외국인 선수"라고 했고, 바티스타는 "이양기의 호의는 물론, 목살을 나눠먹은 추억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양기는 시즌이 끝나가는 게 못내 아쉽단다. 바티스타는 재계약할 예정이지만 시즌 끝난 뒤 일단 고국 도미니카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재계약할 때까지 몇달간 못볼걸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바티스타가 내년에도 한화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또 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