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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에서만 15시즌째. 그러나 SK 이호준(35)에게 올 시즌은 너무나 혹독했다.
한마디로 '배수의 진'이었다. 주장은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자리. 선수단을 통솔해야하는 야전사령관 성격을 지닌 주장이 그라운드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선수들에게 어떤 지시를 내리기 쉽지 않다. 그런 부담을 감수하고 이호준은 주장을 맡았다. 그만큼 각오는 대단했다.
올 시즌 SK는 악재가 너무나 많았다. 시즌 전부터 김광현의 안면마비 사건이 있었고, 시즌 중반 팀내 핵심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을 입었다. 또 정신적인 지주나 다름없는 SK 김성근 전 감독의 자진사퇴에 이은 경질사태까지 터졌다.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이호준은 18일 한화전이 끝난 뒤 "올 시즌 정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말도 많이 하고 유쾌하게 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악재가 계속 터졌다. 현실을 직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시즌 중간부터 말없이 선수단을 이끌었고, 별로 하고 싶지 않은 팀미팅까지 자주 하며 각오를 다졌다"고 했다.
희생해야 할 부분도 많았다. 원정을 가서 단 한 차례도 외부에서 식사를 한 적이 없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선수단을 이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딱 한 차례 아버지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만수 감독대행이 호출을 해 부랴부랴 숙소로 돌아온 적도 있단다. "그때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가 '빨리 들어가라'고 성화를 하셔서 마음이 괜히 짠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정신력은 시즌 막판 빛을 발하고 있다. 팀은 2위를 끈질기게 지키고 있고, 이호준의 컨디션도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 그는 이날 2회 한화 선발 송창식을 상대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만루홈런을 날렸다.
노련미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이호준은 "그 상황에서 송창식이 직구 스트라이크를 던질 것 같아서 노리고 있었다. 전 타자 안치용에게 볼넷을 내줬기 때문이다. 제대로 걸렸고, 맞는 즉시 홈런인 것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개인통산 5호 그랜드슬램. 그는 다음 타석에서도 2타점 중전 적시타를 치며 이날만 무려 6타점을 올렸다. 4타수 2안타, 1볼넷.
이호준은 "우린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랐었다. 그래서 자존심을 강조하고 있다. 김광현 정근우가 어려울 때 몸을 잘 만들어 올라온 것이 고맙다"고 했다. SK의 믿음직한 주장답다. 인천=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