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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듯 닮은 '우승 주역' 이정철 감독-김희진 이야기

김가을 기자

기사입력 2017-04-10 20:45


2016~2017시즌 NH농협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팀 IBK 기업은행의 이정철 감독(왼쪽)과 김희진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7.04.06.

2016~2017시즌 NH농협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팀 IBK 기업은행의 이정철 감독(왼쪽)과 김희진이 인터뷰를 앞두고 장난을 치고 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7.04.06.

"밥 잘 챙겨먹으라니까."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이 긴 한숨을 내쉬며 김희진(IBK기업은행)에게 잔소리를 던진다. 하루 세 끼를 꼭 챙겨먹어야 할 선수. 애플파이로 얼렁뚱땅 첫 끼를 해결하는 김희진의 모습이 영 못 마땅하다. 이 감독의 따가운 시선에 김희진은 "아침에는 자느라 밥 먹을 시간이 없는데…"라며 잦아드는 목소리로 변명한다.

감독과 선수의 대화라기에는 믿기지 않는다. 언뜻 듣기에는 영락없는 '부녀' 사이 대화다. 두 사람에게 "아버지와 딸 같다"고 했더니 이정철 감독은 "벌써 7년을 함께했다. 피만 섞이지 않았지, 부녀나 마찬가지"라며 웃었다. 김희진 역시 "지난 7년 동안 부모님보다 감독님 얼굴을 더 많이 본 것 같다"고 맞장구쳤다. 7년이란 세월은 감독과 선수 사이를 제2의 가족으로 만들었다.

다른 듯 닮은 두 사람 이야기

'막내 구단' IBK기업은행이 2016~2017시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챔피언에 오르며 창단 7년 만에 세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창단부터 줄곧 IBK기업은행을 지킨 '우승주역' 이정철 감독과 김희진을 6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 호텔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정규리그 시상식을 앞두고 진행됐다. 이 감독은 검정색 정장을 갖춰 입었고, 김희진은 흰색 니트를 입고 나왔다. 한 눈에 봐도 차이나는 의상. 색상 대비만큼이나 성격도 판이했다.

이 감독은 흔히 말하는 아침형 인간이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코칭스태프와 오전 회의를 하고 왔다고 했다. 이 감독은 "하루 세끼를 챙겨먹지 않으면 안 되는 스타일이다. 아침밥 먹고 회의한 뒤에 점심까지 먹고 왔다"고 말했다.

반면 김희진은 올빼미형이다. 아침잠이 많아 하루 세끼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김희진은 "아침에 못 일어나겠다"며 "아침밥 먹는 시간에는 그냥 잔다. 하루 한 끼만 먹어도 된다"며 베시시 웃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 그러나 이 감독과 김희진 사이에는 너무나도 닮은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배구에 대한 열정이다. 또래보다 다소 늦게 배구에 입문한 두 사람은 배구 실력을 기르기 위해 두 배의 땀을 흘렸다. 실제 이 감독은 고등학교 1학년 입학 후 28일 만에 자퇴, 김희진은 학창시절 1년을 휴학하며 배구에만 몰두한 바 있다.

이정철 감독이 말하는 '선수' 김희진

'배구 열정'으로 똘똘 뭉친 두 사람은 2010년 '신생구단' IBK기업은행의 창단 멤버로 사제의 연을 맺었다.

이 감독은 "IBK기업은행이 창단한 것은 사실상 김희진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희진이는 프로 입문 전부터 익히 알려진 유망주였다. 두 말이 필요 없는 선수"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실제 김희진은 중앙여고 2학년이던 2009년, 고등학생으로는 유일하게 태극마크를 달고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베테랑 감독과 유망주가 힘을 합친 IBK기업은행은 '막내 돌풍'을 일으켰다. 2011~2012시즌 정규리그 4위를 시작으로 2012~2013시즌 통합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2년만에 정상에 우뚝 섰다. IBK기업은행은 6년 동안 챔프전, 정규리그, KOVO컵에서 각각 3회 우승하며 자타공인 '신흥강호'로 자리잡았다.

이 감독은 "2000년대 초반 다른 구단에서 감독을 하다 그만뒀다. 그때 '나는 다시는 감독을 할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희진이를 만나서 배구 인생 마지막에 큰 복을 받았다"며 "좋은 선수들 만난 덕분에 지도자로서 내 꿈을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희진이 보는 '감독' 이정철

그렇다면 김희진에게 이 감독은 어떤 존재일까. 한참을 생각하던 김희진은 "감독님 앞에서 말하려니 쑥스럽다"며 "처음에는 마냥 무섭기만 한 호랑이 감독님이었는데, 지금은 이빨이 두 개쯤 빠진 호랑이 감독님 쯤 되는 것 같다"며 짐짓 센 척을 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 감독이 "나는 변한게 없다"며 응수했다. 이에 김희진은 "솔직히 처음에는 감독님이 너무 무서웠다. 훈련도 힘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감독님께서 우리에게 엄격하게 하신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지금의 김희진도 없다고 생각한다. 감독님께서 나를 센터뿐만 아니라 라이트까지 소화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무엇보다 프로는 결과로 이야기 하는데, 지난 여섯 시즌 동안 정말 최고의 성적을 냈다. 내게는 무섭지만 고마운 존재"라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질문은 너무 쑥스럽다. 감독님 안 계실 때 따로 대답하겠다"며 호호 웃었다.

영광의 7년, 그리고 갈림길

이 감독과 김희진은 지난 7년 동안 그야말로 '꽃길'만 걸었다. 2012~2013시즌부터 5연속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았다. 단 한 해도 우승컵을 놓친 적이 없다. 스승과 제자는 입을 모아 "최고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새내기 팀을 단숨에 우승으로 이끈 주역인 이 감독과 김희진. 그러나 두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은 갈림길을 만났다. 김희진이 올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희진이가 계속해서 우리 식구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나는 희진이가 계속해서 IBK기업은행에 남아주기를 바란다. 물론 최종 결론은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희진이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꽃길을 걸어온 두 사람은 다음 시즌에도 함께 걸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그동안 함께 일궈온 그 길이 바로 IBK 배구의 역사로 남을 거라는 사실이다.

봄 햇살만큼이나 눈부시게 빛나는 케미가 우승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격한 환희 후에 밀려오는 공허감 속에는 서로에 대한 고마움만이 남았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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