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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 다시 시작하자.'
이번 올림픽은 한국 스포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이번에 3회 연속 '10-10(금메달 10개+10위권 이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 종합 8위로 전체 메달수(21개)로는 1984년 LA올림픽(금6, 은6, 동7) 이후 최저이고, 종합 순위서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금9, 은12, 동9·9위) 이후 치른 3개 대회서 가장 낮아졌다.
특히 한국은 양궁, 태권도, 사격 등 늘 메달을 따왔던 '텃밭'에 대한 편식현상이 두드러진 반면 육상, 수영 등 기초종목에선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유력 종목으로 여겼던 유도, 배드민턴, 탁구 등에서는 오히려 퇴보했다. 특정 종목에 의존하는 부실한 한국 스포츠 경쟁력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다소 실망스런 리우올림픽의 '스포츠 코리아'는 충격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번을 반면교사로 삼아 장기적인 안목으로 한국 스포츠의 새판을 준비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 스포츠는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대전환기를 맞이한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합쳐진 통합대한체육회가 본격적인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리우올림픽을 위해 공동 회장 체제로 운영된 대한체육회는 오는 10월 초대 통합 회장을 선출한다. 비로소 한국 스포츠의 전반을 아우를 완성체가 가동된다. 체육인들은 "각 종목 통합 과정에서 정부 개입, 알력 다툼 등 부작용이 없지 않았지만 시대적 큰 물줄기에 따라 통합으로 가는 이상 한국 스포츠에 새로운 질서를 정립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 통합체육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기대어린 시선도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리우올림픽 한국선수단을 이끈 정몽규 선수단장의 반성이 눈길을 끈다. 정 단장은 리우올림픽을 마감하는 인사말에서 "이번 대회에서 약진한 영국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한국 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정책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장기적, 체계적 투자 지원책 마련, 우리의 체질에 맞는 선택과 집중, 해외 사례 벤치마킹 등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합 2위 영국과 종합 6위 일본은 리우올림픽에서 스포츠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를 통한 성공 케이스로 소개되고 있다. 영국은 리우올림픽을 겨냥해 4년간 메달 유망주 훈련에 총 3억5000만파운드(약 4945억원)를 투입했고,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한 2013년부터 스포츠 중흥 프로젝트를 추진해 스포츠청 신설, 스포츠 투자 금액을 대폭 늘렸다.
얼핏 보면 영국와 일본이 엘리트 체육에 집중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다져 온 생활체육을 기반으로 한 엘리트 육성 시스템이 자리잡았고 이 시스템을 거쳐 발굴된 국가대표에 대한 지원에서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일본은 1980년대 이미 통합체육회를 출범시켜 생활체육의 천국으로 자리잡았다.
이젠 생활체육이다. 통합체육회가 향후 한국 스포츠의 체질 개선에 중점을 둬야 할 대목이다. 생활체육 우선-엘리트 도외시가 아니라 선진국 모델처럼 국민생활화 된 스포츠 활동을 기반으로 저변을 넓혀 엘리트 발굴의 풀을 확대하는 상생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자리잡을 때만이 한국 스포츠의 고질병으로 지적된 '선수 자원이 없다. 기초종목은 특히 심하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대한체육회의 리우올림픽 결산 보고서에도 이에 대한 고민이 잘 나타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대책의 하나로 '피라미드형의 꿈나무→청소년→후보→국가대표 엘리트 체육 육성 시스템의 정착을 통한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 유도', '학교체육, 스포츠클럽 등의 활성화를 통한 엘리트 선수 수급 시스템 개선'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스포츠는 지난 반세기 동안 권위주의 시대의 전유물인 성과지상주의에 익숙해 있던 게 사실이다. 리우올림픽은 그에 대한 한계를 보여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펜싱 박상영, 복싱 함상명 등은 '즐기는 올림픽'의 젊은 자세로 풋풋한 감동을 주었다. 일상에서 즐기는 생활 스포츠 문화가 확산되면 이보다 더 많은 감동을 줄 수 있다.
스포츠 저변 확대를 통한 엘리트 육성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긴 안목으로 가야 한다. 국민도, 체육인도 단기간 성과를 내려놓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원광대 김동문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우리는 시작 단계다. 선진국형 시스템이 효과를 내려면 10∼20년간 성적에 대한 미련은 접고 장기 프로젝트로 꾸준히 밀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도 늘려야 한다. 2016년 체육 부문 정부 예산은 1355억원으로 전체 예산(386조원) 대비 0.04%에 불과하다. 2008년 비중 0.09%부터 해마다 감소했다. 부족한 부분은 1조원 안팎의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충당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에서도 체육은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다. 2015년 문체부 예산 배분을 보면 문화예술 부문 2조3600억원, 관광 1조3700억원, 체육 1조3500억원(이상 기금,추경예산 포함)이었다.
앞으로 생활체육 기반으로 재편하려면 재정 지원 확대가 불가피하다. 지역 스포츠클럽과 인프라 확충이 없으면 생활체육이 뿌리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부 지원은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한 지역 체육회 관계자는 "생활체육 클럽을 신설할 때 정부 지원이 나온다고 해서 만들었는데 이후 운영에 들어가면 자급자족하라며 나몰라라 하는 바람에 운영난에 허덕이는 클럽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스포츠 바우처 제도의 확대를 제안했다. 체육진흥공단이 스포츠클럽 활동비(월 최대 7만원)를 지원하는 스포츠 바우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 가구 중 만 5세~18세 유소년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 김 교수는 "스포츠 바우처가 적용되는 기관도 한정돼 있다. 대상 기관과 수혜자를 늘리면 생활체육을 보급하는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면서 "특히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실버체육에 대한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는데 바우처 제도 활성화가 더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생활체육 저변 확대를 체육 관련 예산에만 얽매이지 말고 생활체육은 국민복지와 연결되는 만큼 복지예산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엘리트 스포츠의 미래를 위해, 국민복지를 위해서도 한국 스포츠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중론은 모아졌다. 이제 통합체육회가 길잡이 지팡이를 잡아야 한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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