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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기침과 어지럼증에 충혈된 눈. 그런데 16득점 대폭발.
그런데 마스크를 착용한 육서영은 '천하무적'이었다. 공을 때리는 족족, 도로공사 코트에 꽂혔다. 이날 16득점을 몰아치며 경기 MVP가 됐다.
마스크의 힘이었을까. 사실 육서영은 이날 정상이 아니었다. 지독한 감기 때문이었다. 선수단 내 감기 환자가 속출했는데, 육서영도 도로공사전 3일 정도를 앞두고 아프기 시작했다.
육서영은 "감기 때문에 어지러웠다. 그래도 경기에서는 최대한 집중하려 애썼다. 도핑 문제로 약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 낫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그런 육서영을 향해 김호철 감독과 코치들은 "아프니까 더 잘한다"고 짓궂은 농담을 했다. 김 감독은 "감기 때문에 연습을 못 하고 시합에 나갔는데, 연습 안 하니 더 잘한다"며 신기해했다. 육서영도 "아프면서 힘이 빠지니, 그게 나에게는 득이 되지 않았나 싶다"며 웃었다. 모든 스포츠가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제대로 힘을 싣지 못하고, 힘이 빠져야 더 파워풀해진다는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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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활약의 비결이 있었다. 바로 세터 천신통과 만든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이 경기를 앞두고 육서영은 통역을 통해 "이렇게 볼이 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천신통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볼이 날아오면, 때리기 힘들다는 걸 천신통이 알아볼 수 있는 영상을 구해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랬더니 도로공사전에서는 그 때리기 힘든 토스볼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육서영은 "오늘이 천신통과 함께 경기한 후 토스가 가장 좋았던 날인 것 같다. 제일 편하게 때렸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천신통도 "소통을 통해 호흡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육서영이 아픈 가운데 공을 잘 때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화답했다.
육서영은 2019년 기업은행에 입단한 후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하다, 올시즌 급성장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한 자리를 잡았다. 그는 "감독님이 비시즌 믿음을 주셨다. 또 아시아쿼터 세터가 합류해 시즌 전부터 손발을 많이 맞춰본 게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동력을 설명했다.
육서영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건, 기업은행이 21억원을 투자해 야심차게 영입한 이소영의 어깨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소영이 제 컨디션을 찾으면 황민경까지 3명이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쳐야 한다. 육서영은 "선의의 경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코트에 들어갔을 때 내 몫을 하고 싶다. 누가 좋지 않을 때 서로서로 도와줄 수 있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주전으로 나갔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며 밝게 웃었다.
화성=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