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빵점짜리 아빠다."
2015년 은퇴 후 곧바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초보 지도자였지만 화려했다. 2015~2016시즌 V리그 정규리그 18연승으로 단일 시즌 최다 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리고 2016~2017시즌엔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대한항공을 제압하고 정상에 섰다. 정규리그 우승과 챔피언 등극, 지도자가 된지 단 2년만에 이룬 성과다.
해볼 건 다 해본 '감독 최태웅'을 9일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현대캐피탈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그가 환하게 웃으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어이쿠, 멀리서 이렇게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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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생일인지 조차 최 감독은 몰랐다. 챔피언 등극 후 집에 가지도 못했다. 트라이아웃 전략을 짜고 있었다. 자신의 목에 팔을 걸며 애교를 부리는 아들의 모습에 미소를 짓지만 머릿속은 온통 배구 생각 뿐이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너무 앞만 보고 있다. 그런데 아내와 아이들은 나만 본다." 미묘한 표정의 최 감독,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난 빵점짜리 아빠다."
최 감독에게 쉼표는 없다. 일과 배구, 그리고 배구와 일 뿐이다. 집에 가도 배구다. "쉴 때도 배구만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 말아야지 해도 애들 숙제 봐주는 것 외에는 딱히 뭘 같이 한 적이 없다."
씁쓸하게 웃는다. "이제 첫째는 조금 커서 단념할 줄 안다. 아빠랑 뭘 같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빨리 인정한다. 둘째는 아직 어려서 형 만큼은 아닌 것 같은데 이제 포기를 알게되지 않을까. 그래서 조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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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의 일이다. '프로 초짜' 최태웅은 배구팬 조재영 씨를 배구장에서 만났다. 불꽃이 튀었다. 배구 밖에 모르던 청년 최태웅이 영화관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조재영 씨가 영화관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었다. 둘은 만남의 이듬해인 2003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런데 최 감독, 무심해도 너무 무심하다. 아내가 나온 대학교를 잘 기억 못한다. 국내외 선수, 감독 정보를 줄줄 외는 그가 긴가민가 한다. "용인대 출신일걸요? 아닌가…. 아! 맞을 거에요."
최 감독은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아내는 모든 걸 나에게 맞춘다. 심지어 사과 한 개를 깎아도 절반은 나를 주고 나머지 애들 준다. 남은 심지만 본인이 먹는다"라며 "내가 압박감에 눌릴 때면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 조건 없이 나만 믿는 거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한다. "딱 현모양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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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부터 열까지 배구 뿐인 최태웅의 인생. 과연 배구가 없는 그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음…. 내가 먹는 걸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요식업을 한다고 하면 그건 또 안정되지 않고 쉽지 않은 일이다." 한참 생각한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배구 분석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다시 원점이다. 그는 배구 없이 살 수 없다. 또 배구 이야기가 나오니 활짝 웃는다. "기존 시스템보다 간결하고 쉬운 독창적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 혼자만의 힘으론 안 될 것"이라며 "그래서 전부터 조금씩 프로그래밍 공부도 했지만 너무 어렵다. 지금은 손 놨다"고 했다. 이어 "외국 돌아다니며 많은 경기를 보고 정보를 정리해 후배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공부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배구 이야기에 언제 미안해했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돌아온 최태웅. 천생 배구인이다. 그렇게 집에서 '0점짜리 아빠'는 코트에서 '100점짜리 배구 감독'이었다.
천안=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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