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레전드는 벤치에서 뜨거운 기운을 전하고 있었다. 또 다른 레전드는 하늘나라에서 자신의 철학이 담긴 축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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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피구, 호나우두, 데이비드 베컴 등과 함께 갈락티코 1기 일원으로 활동했던 지단은 엘 클라시코의 치열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1월 지휘봉을 잡은 '감독' 지단은 기대만큼의 인상적인 지도력을 보이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순위는 3위에 머물러 있었다. 조제 무리뉴 감독 조차 0대5 참패의 쓴 맛을 봤던 엘 클라시코 데뷔전. 상대는 39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간 '당대 최고의' 바르셀로나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레알 마드리드의 정신력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주축 선수들이 출전시간에 불만을 품으며 흔들리고 있었다. 팀이 뭉치지 못하니 고비를 넘지 못했다. 이날도 선제골을 먼저 내주며 위기를 맞았다. 후반 35분 베일의 골이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인정되지 않는 불운도 겪었다. 후반 38분에는 세르히오 라모스의 퇴장으로 숫적 열세의 상황까지 맞이했다. 하지만 이날 레알 마드리드는 달랐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악조건을 이겨냈다. 결과는 승리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엘 클라시코를 통해 하나가 됐다. 역전 우승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승점 69점이 된 레알 마드리드는 선두 바르셀로나(승점 76)와의 승점차를 7로 줄이며 우승의 불씨를 살렸다. 이번 엘 클라시코는 지단의 감독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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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크루이프, 엘 클라시코와 함께 잠들다
크루이프는 지난달 24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 엘 클라시코는 크루이프 추모 분위기 속 열렸다.
크루이프는 지금의 바르셀로나를 만들었다. 선수부터 경기의 철학까지. 모두 크루이프의 작품이었다. 크루이프의 철학은 바르셀로나를 통해 완성됐지만 그가 축구계에 미친 영향은 바르셀로나 뿐만이 아니었다.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도 기꺼이 추모에 동참한 이유다.
숙명의 라이벌전이었지만 크루이프를 추모하는 마음은 하나였다. 경기 시작 전 경기장을 가득 메운 전 관중들이 크루이프의 상징인 '14번'과 '고맙습니다 요한(Gracies, Johan)'이란 문구를 중심으로 카드섹션을 하는 장관을 이뤘다. 바르셀로나의 선수들도 가슴 중앙에 '고맙습니다 요한'의 문구를 새겼다. 그를 위한 헌정 영상도 준비됐다. 경기 전, 바르셀로나에서 크루이프가 활약했던 영상이 전광판을 통해 상영됐고, 크루이프와 함께 했던 제자 펩 과르디올라, 호마리우, 로날드 쿠만 등이 그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크루이프에 대한 추모는 경기 중에도 계속됐다. 양 팀의 선수들과 관중들은 킥오프 직전 크루이프를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도 진심으로 그를 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 14분엔 크루이프의 등번호인 14번을 기리기 위해 전관중이 1분간 기립 박수를 보냈다.
바르셀로나는 점유율에서 68.3%로 레알 마드리드를 압도했다. 고인이 생전 강조하던 바로 그 축구였다. 하지만 마무리에서 아쉬웠다. 케일러 나바스 골키퍼의 선방과 레알 마드리드의 투지에 막혔다. 크루이프 사후 첫 엘 클리시코에서 승리를 노렸던 바르셀로나는 고개를 떨궜다. 무패행진도 하필 이 경기에서 멈췄다. 크루이프 사후 첫 경기에서의 패배는 바르셀로나 축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