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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저축은행이 V리그 전성시대를 열었다.
해프닝도 있었다.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은 우승을 결정짓자 기쁨의 세리머니를 하다가 바지가 찢어져 선수들의 헹가래를 늦게 받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V2' 달성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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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을 앞두고 김 감독은 지난 시즌 창단 2년 만의 V리그 정상에 선 것을 '운'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팀은 정상권 팀이 아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릎 수술을 한 '공격의 핵' 시몬이 돌아올 때까지 버텨줄 외국인 공격수를 찾지 못했다. 또 연습 경기조차 하지 못했다. '겸손'은 핑계가 아닌 김 감독의 불안한 마음을 대변한 단어였다. 예상대로 우여곡절의 시즌이었다. 1라운드가 끝나자 부상 선수들이 속출했다. 4라운드에선 3연패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또 5라운드 막판에는 주전 세터 이민규마저 쓰러졌다. 그러나 고비가 닥칠 때마다 김 감독의 '관리자' 능력이 빛을 발했다. 선수들의 몸 상태에 따라 훈련을 유연하게 조절했다. 특히 김 감독은 '밀당의 귀재'였다. 분위기에 따라 경기력 기복이 큰 젊은 피들의 심리를 장악했다. 김 감독이 이번 시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이민규 부상 이후 팀을 책임져야 했던 백업 세터 곽명우를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김 감독이 택한 것은 '믿음'이었다. 감독의 믿음에 곽명우는 춤을 췄다. 20일 챔프전 2차전에선 공격수들에게 자로 잰 듯한 토스를 배달했다. 프로 3년차 사령탑인 김 감독은 이번 시즌 지략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이다. '최태웅표 스피드배구'로 정규리그를 삼킨 현대캐피탈의 보이지 않는 빈틈을 파고들었다. 주포 오레올을 서브 타깃으로 삼아 철저하게 공격 빈도를 줄였고 현대캐피탈보다 더 빠른 플레이로 '원조 스피드배구' 팀임을 증명했다. 4차전에선 더블 리베로 전략으로 수비의 안정을 꾀했다. 범실이 늘어날 때는 공격력으로 위기를 헤쳐나가게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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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시몬, 그가 남긴 유산은 V리그 역사다
시몬은 올 시즌 전 좋지 않은 무릎에 결국 칼을 대야 했다. 시즌 초반 결장이 예상됐다. 그러나 시몬은 빠른 재활로 2015~2016시즌 개막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명불허전이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트리플크라운(후위, 서브, 블로킹 3개 이상 달성) 제조기였다. 정규리그에서 9차례를 작성했다. 삼성화재의 '독일산 폭격기' 괴르기 그로저보다 3차례 더 많은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했다. 10번째 트리플크라운은 지난 12일 달성했다. 지난 시즌보다 2배가 많은 횟수였다. 시몬은 이번 시즌에도 공격성공률 2위(56.05%), 속공 1위(67.88%), 퀵오픈 1위(68.31%), 블로킹 1위(세트당 0.742개), 서브 2위(세트당 0.636개)를 기록했다. 시몬은 두 시즌밖에 뛰지 않았지만 152개의 서브를 성공시켰다. 또 공격 득점도 1500점을 돌파했다.
시몬이 다른 외인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인성이다. 시몬은 분위기에 따라 경기력 편차가 컸던 젊은 선수들의 정신력을 다잡아줬다. 특히 시몬을 통해 교육 효과가 나타났다. 선수들은 세계 최고 선수의 몸 관리법과 배구를 대하는 자세, 승부욕 등 많은 부분을 보고 배웠다. 코트 안팎에서 솔선수범하던 시몬은 송명근 송희채 이민규 등 젊은 선수들에게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또 코치 경력없이 곧바로 프로 팀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에게도 깍듯하게 대했다. 경기가 끝나면 김 감독에게 허리를 굽혀 90도로 인사하는 예의범절도 갖췄다. 이런 인성을 일찌감치 파악했던 김 감독은 지난 시즌 시몬을 주장으로 임명하려는 마음을 가지기도 했었다. 시몬이 남긴 유산은 곧 V리그의 역사였다.
안산=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