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라이벌전 굴욕사 뒤엎은 현캐, 고래도 춤추게 하는 '최태웅의 밀당 리더십'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5-11-05 17:52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 V리그 최고의 라이벌이다.

하지만 지난 8시즌만 놓고 보면 무늬만 라이벌이었다. 양팀 상대전적을 살펴보면 삼성화재가 압도했다. 2005년 프로 태동 이후 팽팽함은 두 시즌 뿐이었다. 2005년(2승2패)과 2006~2007시즌(3승3패)이었다. 균열은 2007~2008시즌부터 일어났다. 삼성화재가 5승2패로 크게 앞섰다. 이후 5승2패→5승1패→4승1패→4승2패→5승1패→3승2패→5승1패로 삼성화재의 우위가 이어졌다. 현대캐피탈은 감독을 세 차례나 바꾸며 삼성화재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올 시즌 기류가 바뀌고 있다. 현대캐피탈이 굴욕의 라이벌전 역사를 뒤엎고 있다. 1라운드 맞대결에서 세트스코어 3대0 완승을 거둔 현대캐피탈은 4일 2라운드에서도 3대0으로 승리를 거뒀다. 현대캐피탈이 V리그 슈퍼매치라고 불리는 삼성화재와의 라이벌전에서 연속으로 세트스코어 3대0 승리를 챙긴 것은 프로 출범 이후 처음이었다.

현대캐피탈은 전통적으로 높이가 좋은 팀이었다. 장신 센터들이 즐비해 높이로 상대를 압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현대캐피탈만의 색깔이 사라지면서 삼성화재의 기에 눌렸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다르다. 선택과 집중이 눈에 띈다. 상대 속공은 내주더라도 레프트와 라이트 공격은 높이로 막아내고 있다. 4일 삼성화재전 3세트 때 연출된 장면이 이를 입증한다. 13-6으로 앞선 상황에서 문성민이 삼성화재 센터 이선규의 속공과 정동근의 세 차례 스파이크를 막아내는 강한 집중력으로 매치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특히 '초보 감독'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의 밀당 리더십도 돋보이고 있다. 최 감독은 삼성화재와의 시즌 첫 대결에서 충격요법을 활용했다. 경기 당일 오전 훈련 때 선수들의 훈련 태도가 마음에 들지않자 훈련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짐을 싸고 숙소 복귀를 명했다. 감독의 불호령에 선수들은 느슨해진 긴장감을 다시 조였다. 그러나 시즌 두 번째 대결에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풍겼다. 최 감독은 경기 전 라커룸에서 명언으로 선수들의 필승의지를 고취시켰다. "배구에는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다. 코트를 놀이터라고 생각해라. 놀다온다고 생각해라. 즐기고 와라." 마음의 짐을 던 선수들은 감독의 주문대로 '스피드 배구'를 즐겼다.

최 감독의 믿음은 선수들을 춤추게 만들었다. 주전 세터 노재욱은 최근 훈련 중 허리를 삐끗해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래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웜업존에서 대기하려고 했다. 그러자 최 감독은 휴식을 부여하며 노재욱을 아예 경기장에 데려오지 않았다. 부상에서 회복한 이승원 외에 백업 세터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최 감독은 이승원을 믿었다. 그리고 강한 책임감을 부여했다. 최 감독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네가 이 경기는 책임져라"고 했다. 특히 최 감독의 합리적인 선수 운용도 돋보였다. 훈련에선 이승원이 주전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는데 정작 경기에 노재욱이 선택을 받을 경우 이승원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현대캐피탈은 라이벌전 트라우마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원동력은 '이기려는 배구'가 아니다. 하얀 도화지에 색칠해 나가고 있는 최 감독의 '색깔있는 배구'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news@sportschosun.com -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