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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수학 선생님하고 문제 풀면 교육이고 체육 선생님하고 공 차면 노는 것인가요." 한 체육교사의 한탄에 서운함이 묻어났다. 우리 '학교체육'이 표류하고 있다. 평범한 청소년들의 체육 수업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났다. 청소년 비만율이 증가하고 신체능력은 저하됐다는 데이터가 수두룩하다. 원인은 복잡하다. 스마트폰이 운동장을 대체했다. 학생들의 욕구는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해진 반면 현장 인력과 프로그램은 보강되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의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청소년들의 신체, 정신건강에 경고등이 켜지며 심각성이 부각됐지만, 학교체육 부재는 이미 뿌리 깊었던 문제다. 많은 유·청소년들이 학교 내 체육 활동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체육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어디로 갈까. 사교육 아니면 게임이다. 이윤희 교사는 "기본적으로 '놀이'를 싫어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예전 청소년들이 몸을 쓰는 놀이를 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 이런 형태로 스트레스를 풀다보니 몸을 잘 못 쓰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양극화도 심해졌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사교육'으로 빠진다. 비용을 더 부담하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다. 임소미 교사는 "목마른 아이들이 많아졌다. 잘 하고 좋아하는 아이들은 시간과 돈을 따로 내서 학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학교체육 교육이 붕괴된 후 학생들의 스포츠 소비 행태에 양극화 현상이 크게 나타났다. 공부만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한다.
'체력 저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팝스'라는 기계적 기준으로 학생 체력을 줄세우는 방법 자체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정윤교 교사는 "예전과 비교해 활동 자체가 바뀌었다. 요즘은 오래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말아올리기 같은 운동을 따로 하지 않는다. 한두 달 연습해서 측정하면 잘 나올 것"이라며 밖에서 보는 것처럼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윤희 교사도 "우리때야 축구나 농구정도 했지, 이제는 탁구, 배드민턴, 격투기, 수영, 롱보드 등 다양한 종목을 접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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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학교 운동장과 중·고교 정규 체육수업을 최신 트렌드에 맞도록 탈바꿈시키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획일화된 연병장식 운동장은 21세기 학생들의 욕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안산 송호고는 최근 기존 운동장을 밀어버리고 풋살장, 테니스장, 생태공원을 품은 스포츠공원으로 변신시키는 공사를 시작했다. 황교선 송호고 교장은 "학생들이 찾아오는 운동장을 만들고 싶다. 일단 오게 만들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진단했다. 정윤교 교사는 경기도에서 시행한 '학생 선택 중심 체육 교육과정'을 모범 사례로 추천했다. 일본의 '1인1기'처럼 중학교 체육시간 내내 한 종목만 정해서 즐기는 것이다. 정 교사는 "3년 내내 탁구만 친 학생을 봤는데 정말 잘 치게 됐다"고 말했다. 풀어야 할 숙제는 적지 않다. 정 교사는 "전문 인력 부족이나 타 교과 선생님들과 업무 분장 등 해결할 일이 많다. 경기도에서도 크게 확대를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던 방식"이라고 손꼽았다.
결국 인식 전환과 제도 개선, 시설 보완 삼박자의 조화가 요구된다.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는 정책 변화나 전체적인 공감대 형성은 극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교육 일선에서 즉각적으로 추진 가능한 변화는 바로 시설이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장비를 갖추고 안전하며 즐겁게 운동할 수 있다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몰리기 마련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부터 디지털 기반 스마트 건강관리교실 구축을 장려하며 예산(교당 5000만원 이내)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수요 증가는 분위기 반전을 유도한다. 세계적인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T1)은 우리나라 전국에 널린 최고급 PC방 문화가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초 체육시설도 이만큼 확충된다면 다른 종목에서도 '페이커'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한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