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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크라머의 고향'헤이렌베인의 얼음판은 뜨거웠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6-03-13 18:20



"표를 구할 수가 없어요."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에서 열리는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파이널 현장에 오기로 한 후배에게 11일 밤 긴급 문자가 왔다. 에인트호번에 사는 후배는 주말 남편, 두 아이와 가족 나들이를 준비했었다. "표가 없어요. 입석까지 전경기, 전석 완전 매진이래요."

12일 오후, 8000명을 수용하는 '스피드스케이팅의 성지' 티알프는 발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찼다. '빙속황제' 스벤 크라머와 요리트 베르스마의 시즌 랭킹 1위 결정전, 네덜란드 에이스들이 총출동하는 시즌 마지막 대회에 27.5유로(약 3만6000원) 입장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크라머의 고향, 헤레인베인 경기장은 축제의 열기로 가득찼다. 경기장 입구부터 늘어선 차들로 인산인해였다. 버스에서 내린 채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오렌지 모자, 오렌지 머플러를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거리에 늘어섰다. 경기장 초입에선 네덜란드빙상연맹에 연 120억원을 후원하는 최대 스폰서인 통신사 KPN이 장갑과 머플러를 무료 배포했다.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눈부신 오렌지 물결이 시선을 압도했다. 얼음을 녹일 듯한 뜨거운 함성이 쏟아졌다. 선수들이 400m 트랙을 질주할 때마다 '오렌지빛' 릴레이 파도 응원이 이어졌다. 장관이었다.

각 레이스가 펼쳐지는 틈틈이, 빙질을 다듬는 인터미션에는 관중들을 위한 끊임없는 볼거리가 이어졌다. 링크 중앙에서 진행되는 주요 선수들의 현장 인터뷰는 링크 천장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통해 관중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만39세에 선수 은퇴를 선언한 '레전드' 밥 데용을 위한 은퇴식도 진행됐다. 밥 데용은 밴쿠버올림픽 남자1만m에서 동메달을 딴 후 '챔피언' 이승훈을 목마 태우는 세리머니로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하다. 밥 데용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링크 중앙에 섰다. 네덜란드왕립빙상연맹(KNSB) 창설 이후 단 2명의 선수만에게 주어진 명예의 전당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기립한 팬들이 그들의 영웅을 향해 갈채와 찬사를 쏟아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크라머와 베르사마가 나란히 선 남자 5000m 마지막 6조 맞대결이었다. 장내 아나운서가 프로레슬링 경기 못지 않은 진행으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이들의 레이스 내내 장내에는 마이클 잭슨의 '빗잇(Beat it)' 등 심박수를 한껏 높이는 음악이 링크에 울려퍼졌다. 크라머가 특유의 '괴물'같은 뒷심으로 4600~5000m 마지막 구간을 29초F로 끊으며 6분11초44, 1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챔피언의 '폭풍 질주'에 티알프는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시즌 랭킹 1위를 확정짓는 순간, 8000여 관중의 떠나갈 듯한 함성이 링크를 휘감았다. 크라머가 손을 번쩍 들고 링크를 돌며 우승 세리머니를 했다. 크라머가 자신의 앞을 지나갈 때마다 팬들은 "크라머, 크라머!"를 연호하며 열광했다.

현지에서 만난 열혈팬 맨디-리안 붐 자매는 로테르담에서 헤레인베인까지 200㎞, 2시간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이 경기장에서 경기가 있을 때면 항상 온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 그 다음은 스피드스케이팅이다. 우리는 스피드스케이팅을 더 좋아한다"며 활짝 웃었다. "우리는 마이클 멀더와 스벤 크라머의 팬"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무려 23개의 메달을 휩쓴 '빙속 강국' 네덜란드의 힘은 팬들의 함성으로부터 나온다.
헤레인베인(네덜란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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