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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여학생체육]김경숙 교수"학교스포츠클럽에서 희망 봤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5-06-05 08:50



"학교 다닐 때부터 체육을 좋아하셨어요?"

햇살 좋은 5월 말 캠퍼스에서 만난 김경숙 이화여대 건강과학대학장이 대뜸 질문을 던졌다. 잠시 망설이자 "왜 그땐 안 좋아했어요?" 한다. 돌발 질문이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바뀌었다. 김 학장은 이화여대 체육과학과 교수 겸 교육부 지정 이화여대 학교스포츠클럽 리그운영 지원센터장이다. 대한체육회 이사로, 2012년 런던올림픽 선수단 부단장으로 일했고, 지난해부터는 4년 임기의 대한체육회 심판위원장으로 일하는 김 학장은 엘리트 체육과 학교체육을 잇는 연결고리다. 여성계를 대표하는 스포츠 행정가이자 스포츠 학자다. 지난 2013년 이대 리그운영 지원센터 출범 이후, 여학생 체육에 누구보다 깊은 관심과 열정을 쏟고 있다. 매년 1만명 가까운 여학생 체육 실태 조사를 통해 현장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감지하고 있는 전문가다.

초등학교 때의 운동 습관, '가족 스포츠'가 중요하다

"초등학교 때 '뜀틀' 트라우마가 심했다. 남자애들이 다 보는 앞에서 뜀틀을 못 넘을 때 엄청 부끄러웠다. 내 차례가 올 때마다 두려웠다"는 고백에 김 학장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공포스럽지,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심리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많은 여학생들이 체육을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 "여자들은 생물학적으로 격렬한 움직임을 선호하지 않는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여자는 여성답게' 식의 성 고정관념도 강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운동하는 여자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체육학자로서 생애주기별 체육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아기, 초등학교 체육시간엔 움직임, 피구 등 놀이를 주로 하다, 중학교에 올라가면 체육은 '종목'이 된다. 남자애들은 동네에서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지만, 여자애들은 중학교에 가서야 '종목'으로 체육을 만난다. 흥미를 가지기 힘들고, 남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생애주기별 체육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매년 설문조사를 해보면 여자아이들은 '체육시간을 좋아한다'고 답한다. '체육시간이 더 늘어났으면, 기회가 더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이것이 '희망'"이라며 웃었다. "지난 몇년간 학교 스포츠클럽 현장에서 '희망'을 봤다. 다양한 방법으로 여학생들을 독려하다보니 '아, 되는구나' 하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여학생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인내해줘야 한다"고 했다. "남자애들은 공만 주면 알아서 뛰어놀지만 여자애들은 속도가 늦다. 다름을 인정하고, 기다려주고,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고, 이끌어내줘야 한다. 일단 재미를 느끼면 더 오래, 더 열심히, 더 잘한다."

김 학장은 여학생 체육에서 가족과 가정교육의 힘을 강조했다. "스포츠 사회학자 맥퍼슨에 따르면 한 개인이 스포츠를 통해 사회화되는 과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개인적 특성, 중요한 타자(친구 코치 선생님 가족 등), 환경 등 3가지"라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이 자녀들의 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가족이 함께 운동하고, 스포츠에 흥미가 높은 가정일수록 아동의 체육 참여율이 높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경험도 소개했다. "우리 때만 해도 체육하는 여자는 많지 않았다. 고정관념이 많았던 시대다. 아버지가 의사신데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높으셨다. '하고 싶으면 너도 해봐'라고 격려해주셨다. 여학생을 운동장으로 이끄는 데는 부모님의 영향이 가장 중요하다."


학교 스포츠클럽이 희망이다

김 학장은 학교 스포츠클럽을 통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2007년 학교 스포츠클럽 제도를 처음 도입한 후 어느덧 8년이 흘렀다. 이때 교육받은 세대가 대학생이 됐다. 우리도 깜짝 놀란다. 일반학과 학생들이 농구, 축구 동아리를 만들어서 뛴다. 넷볼 동아리도 있다. 시간이 걸리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고무적인 일이다." 여성 교육자로서 여학생 체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각 대학들의 자발적인 노력도 강조했다. "스포츠클럽 활동 및 체육 활동은 봉사활동처럼 학생부에 기재는 되지만 입학사정관제에 얼마만큼의 효용이 있는지는 모른다. 각 대학 자율의 문제다. 여자대학, 체육대학, 국립대 등에서 먼저 인정하고 반영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대 역시 바람직한 방향을 고민중"이라고 했다.

여학생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도 강조했다. "햇볕이 싫고, 땀흘리기 싫은 여성들의 특성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 좋겠다. 그 부분까지 고려해서 여학생들이 운동하게끔 세심하게 신경을 써줘야 한다"고 했다. 학교 현장에 널리 보급되고 있는 뉴스포츠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김 학장은 이화여대에 일찌감치 뉴스포츠 수업을 도입했다. "지금은 많이 보급됐지만 처음엔 많지 않았다. 학생들이 원하고, 필요하다고 느껴서 빨리 시작했다. 여학생들은 왜 체육을 하지 않느냐고 하던 시절이다. 플로어볼, 티볼, 킨볼…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지금은 신나게 한다. '움직임의 욕구'를 느낄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스포츠는 여학생들로 하여금 체육활동에 관심을 갖게 하고, 독려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학생들에게 뉴스포츠가 좋은 이유는 규칙이 까다롭지 않고 기술이 힘들지 않고, 쉽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뉴스포츠를 학교 현장에 도입한 후 여학생 체육활동에 붐이 일어났다. 축구, 농구 등 팀 스포츠 정신을 뉴스포츠를 통해 먼저 배운다"고 설명했다. 입문 단계에서 뉴스포츠로 흥미, 자신감을 갖게 되면 스포츠 참여의 폭을 차차 넓혀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뉴스포츠만 해서는 안된다. 전통적 팀 스포츠 종목인 축구 농구 배구도 해야 한다. 다양한 신체활동을 경험하는 기회도 줄 필요가 있다. 우리 아이들은 다양한 것을 선택하고 즐길 권리가 있다. 어쨌든 많이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여학생들을 움직이게 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3, 2014년 여학생 체육활동 실태조사에서 2년 연속 가장 많은 여학생들이 '방과후 하고 싶은 체육활동'으로 '사격'을 꼽았다. '스케이트' '수영'이 뒤를 이었다. 김 학장은 "평소 경험해보지 못한 종목에 대한 '호기심'인 것 같다. '호기심'은 언제나 긍정적인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 학장은 생활체육의 메카 '독일통'이다. 최근 방문한 독일 초등학교의 사례를 소개했다. 스포츠 행정가로서 학교체육, 생활체육, 엘리트체육의 선순환 구조를 이야기했다.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초등학교 교사들이 전과목을 가르친다. 여교사들도 어렸을 때부터 생활체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학교, 지역, 클럽에서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 체육수업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모든 스포츠 종목을 다 잘할 수는 없지만, 수영, 테니스, 탁구 뭐든지 자신있게 한다. 독일처럼 체육이 자연스럽게 생활속에 녹아든다면 우리도 그런 풍경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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