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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세계 양궁 모든 길은 한국으로 통한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2-08-03 20:58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양궁에서 지도자는 '한국'으로 통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은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양궁의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는 대회다. 대회 참가 40개국 중 30%에 가까운 12개국이 한국인 사령탑을 모셔놓고 있다. 12개국 15명의 한국인 감독, 코치가 런던 무대에 섰다. 남자 양궁 단체전과 여자 양궁 개인전 준결승에 각각 한국인 감독이 지휘 중인 멕시코와 미국, 이탈리아가 진출해 '한국인 사령탑 맞대결'이라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양궁장에 분 '지도자 한류'

이기식 미국 감독(55)은 '양궁 한류'를 만들어 낸 주역 중 한 명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까지 세 대회 연속 한국 대표팀 지도자로 나서 14개(금7은5동2)의 메달을 휩쓸었다. 상무와 인천제철을 거쳐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호주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고, 호주 양궁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는데 일조했다. 2005년부터 미국 대표팀을 지휘해 브래디 엘리슨(남자 세계랭킹 1위) 등을 조련해 냈다. 런던올림픽 남자 단체전에서 한국을 잡으면서 또 한 번 힘을 과시했다.

남자 단체전에서 이탈리아를 금메달로 이끈 석동은 감독(57)도 빼놓을 수 없다. 석 감독은 '한국 양궁의 어머니'로 불린 고 석봉근 전 대한양궁협회 고문의 아들이다. 1973년 한국 신기록을 다섯 번이나 세운 석 감독은 1991년 기계류 무역업을 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현지에서 '상급자를 위한 양궁기술'이라는 양궁지도서를 내면서 관심을 끌어 다시 양궁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탈리아 대표팀 기술고문을 거쳐 코치와 감독으로 승진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단체전 은메달에 이어 이번에 남자 단체전에서 금맥을 캤다.

여자 개인전 준결승과 결승에서 연달아 한국과 맞대결한 멕시코 양궁의 뒤에는 이 웅 감독(48)이 있었다. 1997년부터 멕시코 팀을 지휘했던 이 감독은 한국식 훈련 뿐만 아니라 매년 한국 전지훈련을 통해 기량을 급성장시켰다. 여자 개인전에서 은1동1 등 멕시코에 사상 첫 양궁 메달을 안겨 '국민 영웅'이 됐다. 이 웅 감독은 경기 뒤 "한국이 금메달을 따고 멕시코가 은, 동메달을 땄으니 이보다 좋은 조합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웃었다.

세계 양궁 이끄는 한국인 지도자

한국인 양궁 지도자의 해외진출 1세대로는 김형탁 감독(59)과 석동은 감독, 오종봉 감독(55) 등이 꼽힌다. 1984년 LA올림픽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김형탁 감독은 1989년 대만 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등에 출전했다. 1990년부터 말레이시아를 이끌었던 오종봉 감독은 '말레이시아 양궁의 대부'로 통한다.

말이 해외 진출이지 현실은 가시밭길이다. 대표팀 뿐만 아니라 유소년 팀 지도자까지 겸임하면서 선수 발굴부터 육성 등 모든 일을 도맡아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백운 이집트 감독(46)은 부임 초기 양궁 선수가 전무한 상황에서 어린 선수부터 키워 온 경우다. 다른 팀 감독들의 실정도 대개 비슷하다. 하지만 이들은 특유의 성실성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곧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인 지도자들은 믿고 쓸 수 있다'는 풍토를 만들어 냈다. 현재는 국내외 무대에서 일정 수준의 성과를 거둔 지도자들을 앞다퉈 모셔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러다 보니 올림픽 뿐만 아니라 세계선수권과 월드컵 등 국제 대회 때마다 한국인 감독이 이끄는 팀 간의 경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이 현역이나 지도자 시절 대표팀에서 동료나 선후배로 인연을 맺었다. 국제 대회 때마다 한국인 지도자들의 '동창회'가 열리기도 한다. 재미있는 관계도 많다. 이기식 감독과 오교문 호주 감독(40)은 사제지간이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당시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만들어 낸 주역들이다. 18년의 세월을 건너뛴 현재 지도자로 맞대결을 하고 있다. 스페인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조형목 감독(32)과 이미정 코치(33)는 부부 사이다. 조 감독이 스페인 대표팀을 이끌고 있던 2008년 11월 이 코치와 결혼했는데, 스페인양궁협회가 이 코치까지 대표팀으로 모신 케이스다.

한국인 지도자 해외진출, 명과 암

한국인 지도자들의 활약은 한국 양궁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에 위협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해외로 진출한 지도자들은 한국식 훈련법에 맞춰 훈련을 하고 정신력도 끌어 올리면서 한국을 위협할 만큼의 기량을 갖췄다. 상위랭킹에 포진하는 것 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서 한국을 꺾는 경우도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이번 남녀 단체전과 개인전 준결승 진출 팀의 면모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경기 중 한국을 만나면 신경전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한 감독은 "후배 지도자가 한국 지휘봉을 잡고 있는 경우에는 농담조로 '살살 하라'는 말을 하면서 심리전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더 이상 외국 팀들에게 한국은 두려운 상대가 아니다. 넘을 수 있는 산이 됐다. 양궁 공한증(恐韓症)은 없다.

한국인 지도자들의 해외 진출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런던올림픽을 통해 효과가 극명하게 드러난 만큼 지금보다 더 많은 지도자들이 해외로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은 결과적으로 한국 양궁의 발전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기식 감독은 "세계 양궁계에 한국인 지도자가 많아지고 이들이 한국과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한국 양궁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해병대 극기훈련 및 소음 적응 훈련 등 주로 정신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기존 방식보다 과학적인 분석과 기법을 도입한 체계적인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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