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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인터뷰]박태환 후원'삽자루'"나같은 사람도 하는데..."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7-19 08:19



"미안합니다. 대한민국이 미안합니다."

18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 박태환 아버지의 팀지엠피 사무실에서 조촐하게 열린 후원 조인식, 후원자를 자청한 '삽자루' 우형철 SJR기획 대표(49)가 박태환과 처음으로 마주했다. 향후 2년간 10억원을 후원하기로 했다. 박태환의 감사하다는 인사에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19일 호주 전지훈련을 떠나는 박태환에게 든든한 후견인이 생겼다. '홍길동'처럼 홀연 등장해, '키다리아저씨'처럼 10억원을 선뜻 내놓고도 연신 '미안하다'는 이 사람, 대한민국 수학영역 최고 인강(인터넷강의) 인기강사, '삽자루'를 만났다.


'유럽여행중 박태환 후원을 결심'

후원 결정이 알려진 17일 '삽자루''우형철'이라는 이름이 각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휩쓸었다.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조인식에 취재진을 부르지 않았다. 기자를 보더니 난감해 했다. 어렵게 마주 앉은 자리에서 우 대표가 입을 열었다. 후원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15세의 박태환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19세의 박태환에겐 그저 고마웠다. 그리고 23세의 박태환에겐 또다시 너무 미안했다"고 에둘러 말했다.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올림픽의 박태환을 차례로 이야기했다. "갑작스런 후원 소식에 아는 사이인가 했다"는 말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박태환 선수와 아는 사이 아니냐"며 웃었다.

여행사를 함께 운영하는 우 대표는 부인과 유럽출장중 우연히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태환을 봤다. "대한민국 수영영웅이 후원사가 없어서 자비훈련을 하고, 국내에 훈련용 국제규격 수영장도 없다는 말에 기가 막혔다. 박태환 선수로 인해 희망과 기쁨을 누렸던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 7월 초 귀국하자마자 박태환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박태환 아버지' 박인호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본론부터 말했다. "'힐링캠프'를 봤다. 나는 재벌도, 대기업 사장도 아니지만 박태환 선수의 훈련비를 후원하고 싶다." 아버지 박씨는 "처음엔 장난전화인 줄 알았다"고 했다. 런던올림픽 직후 SK텔레콤 전담팀의 4년 후원이 끝났다. 이후 후원사 없이 물살을 가르는 박태환을 향해 여러 목적, 여러 루트로 접근해온 이들이 여럿 있었다. 우 대표와 만났다. 진심을 확인했다. 나흘 후 후원금 조인식, 우 대표는 처음으로 박태환과 나란히 섰다.

'나같은 사람도 후원하는데…'

"재산이라곤 집 한채뿐이다. 그중 방 2개는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다." 수십억원대 자산가일 것이라는 억측에 웃으며 반박했다. "나는 일개 수학강사일 뿐", "나는 박태환 선수에게 미안한,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84학번인 우 대표는 서울대 공대 시절부터 학원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비타에듀, 이투스 등 이러닝 시장, 대한민국 학원가를 쥐락펴락하는 스타 수학강사다. '삽자루(SJR)'라는 심상찮은 별명엔 우 대표의 화끈한 성격이 담겨있다. 공식적으로는 '지식을 퍼나르는 삽'이라는 고상한 의미지만, 원초적 의미는 달랐다. 고교 입시가 있던 1980년대,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소리는 크되 아프지 않은 '삽자루'를 애용(?)했단다. 이제는 전설같은 얘기가 됐다.

한번 마음에 꽂힌 건 기어이 행동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다. "'수영영웅' 박태환에 대한 미안함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평가에 미소 지었다. 한 지인이 우 대표가 유럽여행중 아프리카 카메룬에 식수용 우물을 파주는 프로젝트를 위해 즉석에서 1000만원을 기부한 에피소드를 귀띔했다.


즉흥적인 박태환 후원 결정에 일부 직원의 반대도 있었다. 우 대표의 결심은 확고했다. 후원을 밀어붙인 한마디는 "너, 베이징올림픽 안봤어?"였다. "나는 현재 20여 명의 강사, 직원으로 이뤄진 회사를 운영한다. 월급 주고, 세금 떼고 나면 사실 남는 돈도 많지 않다. 강사들에게 박태환 후원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더 열심히 일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1년에 5억원에 달하는 후원금은 '고용주'인 이투스측에 내년 강의 계약금을 당겨받아 우선 충당했다. "내가 가르쳐온 학생들 모두 박태환 선수를 통해 힘을 얻었고, 꿈을 키워왔다. 이제 학생들이 수학공부를 열심히 하면, 박태환 선수를 후원하게 되는 셈"이라며 웃었다. '공부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 '금메달 에너지'로 바뀌는 과정에 흐뭇함을 나타냈다.

우 대표는 "암탉이 먼저 울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이제는 힘센 수탉이 울어줄 차례"라고 표현했다. "큰 기업이 후원에 나설 때까지 임시로 박태환 선수를 먼저 후원한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더많은 후원사들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나같은 사람, 진짜 보잘것없는 회사가 박태환 후원을 시작했다. 바빠서 신경쓰지 못했던 큰 회사 경영자분들이 '맞아, 저건 우리가 진작 했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며 웃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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