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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동메달리스트' 전희숙(29·서울시청)이 안방에서 '나홀로' 한국 펜싱의 자존심을 세웠다.
경기 시작 직후 연속 찌르기를 허용하며 0-2로 뒤졌지만, 한점 한점 따라붙으며 5-4로 앞선 채 1피리어드를 마쳤다. 2피리어드는 격전이었다. 시작하자마자 5-5 동점을 허용했고, 이후 5-7까지 점수가 벌어졌다. 전희숙은 포기하지 않았다. 7-7, 8-8, 9-9, 10-10 4차례나 동점을 이루는 대접전, 옐로카드를 하나씩 주고받는 신경전을 펼쳤다.
마지막 3피리어드를 10-12, 두점 뒤진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했다. 피스트 옆에 선 채로 응원하던 '절친 에이스' 정길옥(33·강원도청)이 외쳤다. "마지막이야! 희숙아, 조금만 움직여. 아직 시간 많아"라며 후배의 파이팅을 독려했다. 정길옥의 예언대로 승리의 기회가 찾아왔다. 11-12로 뒤지던 상황에서 상대 코치가 격하게 흥분하며, 경기흐름이 완전히 넘어왔다. 주심의 정지신호(알트) 없이 러시아 선수가 일방적으로 경기를 중단했다. 코로베니노바가 경고를 받으며 12-12 동점을 이뤘다. 이후 전희숙은 침착하게 2포인트를 찔러넣었다. 14-12에서 손으로 칼을 막는 커버링으로 인해 상대에게 1점을 허용, 14-13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침착하게 극복해냈다. 마지막 한포인트를 찔러넣으며 포효했다. 극적인 15대13 승리를 완성했다.
전희숙은 2008~2009시즌 터키 안탈냐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듬해 파리세계선수권에서 5위에 오르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세계랭킹 4~5위권을 유지했다. 2010년 세계랭킹 12위, 2012년 세계랭킹 19위, 올해 세계랭킹 21위로 개인전 성적에선 하향세를 그렸지만 단체전에서는 변함없이 에이스의 몫을 해냈다. 남현희, 정길옥, 오하나 등과 함께 지난해 런던올림픽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내에서 열린 그랑프리 대회에서 3년만에 개인전 동메달을 목에 걸며 '제2의 전성기'를 알렸다. 2012년 이후 A급 월드컵, 그랑프리 대회에서 최고 성적은 지난해 2월 폴란드 그단스크 그랑프리에서의 6위였다.
최 코치는 "마지막 집중력, 한포인트의 고비를 넘지 못해 메달을 놓친 적이 많았다. 수비는 단단하게, 공격은 유연성 있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경기운영이나 정신적인 부분에서 잘 이겨낸 것 같다"며 제자의 쾌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3년후인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전희숙은 우리나이로 33살이 된다. 최 감독은 "플뢰레 종목에서 서른세살은 많은 나이가 아니다. 희숙이는 스피드나 파워에서 유럽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공격, 수비동작의 다음 연결동작, 마지막 포인트를 끝까지 찔러내는 집중력만 보완한다면 오히려 노련하게 더 잘할 수 있다"며 희망을 드러냈다.
세계 3위 아스트리드 구야르(프랑스), 세계 4위 이나 데리글라조바(러시아), 세계 34위 카롤리나 에르바(이탈리아)가 전희숙과 함께 4강에 이름을 올렸다. 전희숙은 28일 오후 5시30분 구야르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