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불모지의 꽃'김연아-손연재,행복한 공존이 필요한 이유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2-08-31 11:51



'피겨여왕' 김연아(22·고려대)와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18·세종고)는 행복하게 공존할 수 없을까.

김연아와 손연재는 한때 IB스포츠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손연재는 광장중 시절 슬로베니아 주니어오픈 2관왕 직후 IB스포츠와 계약을 맺었다. IB스포츠는 2010년 4월 김연아와의 결별 이후 리듬체조 유망주 손연재를 키워내는 일에 집중했다. 예쁘고 재능 있는 선수를 김연아 못지않게 키워내는 일을 목표삼았다.

사실 손연재는 운이 좋은 선수다. 본인의 재능에 '걸출한 선배' 김연아와 신수지(21·세종대)의 노하우가 결집됐다. 김연아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전폭 지원했던 IB스포츠의 마케팅 노하우가 손연재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KB국민은행, KCC건설, P&G 위스퍼, 제이에스티나, 스무디킹 등 후원, 광고주가 김연아와 겹친 이유다. 예쁜 여자 스포츠스타를 선호하는 광고계와 대중의 취향 역시 겹쳤다. 훈련 과정에 있어서는 선배 신수지의 길을 따랐다. 러시아 노보고르스크 훈련센터, 크로아티아 전훈, 옐레나 니표르도바 전담코치 모두 4년전 베이징올림픽 당시 신수지가 거친 길이다. 러시아 생활과 훈련 노하우는 손연재에게 그대로 전수됐다. 선배들의 소중한 노하우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였다. 검증된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김연아측과 IB스포츠가 소송을 불사하며 갈라선 상황에서 손연재의 스타덤은 김연아 팬들에게 인정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됐다. 손연재는 2010년 11월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직후 유망주로 떠올랐다. 2011~2012년 지난 2년새 손연재는 '폭풍성장'을 거듭했다. 첫 시니어 무대에서 30~40위권을 맴돌던 성적이 10위권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깜찍한 소녀' 손연재의 일거수일투족이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언론들은 별뜻없이 '제2의 김연아'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김연아 팬들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뚜렷한 성적도 없는 선수'가 '피겨여왕' 김연아를 이용해 마케팅을 한다며 격분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성적도 없는 선수'가 운동은 안하고 CF, 공항패션에만 등장한다며 맹비난했다. 손연재의 기사 아래에는 언제나 'IB스포츠의 언플(언론플레이)'이라는 악성댓글이 달렸다.

손연재는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리듬체조사를 다시 썼다. 리듬체조 개인종합에서 사상 첫 결선무대를 밟았고, 사상 최고 성적인 세계 5위에 올랐다. 동메달에 0.225점 모자란,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러시아, 동유럽이 장악해온 포디움에서 동양에서 온 어여쁜 소녀의 열연은 연일 핫이슈였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메달도 없고 성적도 없는 선수'라는 비난에 2년간 울었다"고 고백했다. "난 그냥 내 일을 열심히 하고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나는 그냥 고등학생인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속상했어요"라며 가슴속 깊은 아픔을 털어놨다. 이를 악물었다. 성적으로 아픔을 넘어섰다. 손연재는 오히려 그 비난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짧은 귀국기간, 1년에 2억 이상 들어가는 훈련비 충당을 위해 급하게 찍은 CF들은 1년 내내 전파를 탔지만, 러시아에서 홀로 하루 8시간 독한 훈련을 견뎌내는 모습, 월드컵시리즈에서 쑥쑥 성장하는 모습은 알려지지 않았다. "저를 리듬체조 선수로 보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해도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을 것같아요. 우리나라 TV에서 리듬체조를 안해주고 접할 기회가 좀처럼 없으니까…." 당찬 실력으로 세간의 오해를 일축시켰다. "올림픽을 통해 팬들이 저의 진짜 모습을 봐주신 것 같아요. 그게 가장 기쁘고 감사해요. '쟤가 리듬체조를 저렇게 하는 저런 애였구나'라고 봐주신 것에 감사드려요. 앞으로 격려도 많이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녀의 소망대로 악플과 편견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오프라 윈프리의 명언대로 '탁월함은 모든 차별을 압도(Excellence excels all discrimination)'했다.


◇2009년 4월 열다섯살 손연재는 김연아의 페스타온 아이스 무대에서 오프닝 공연을 했었다. 김연아를 가까이서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
선수로서 김연아와 손연재가 지향하는 바는 같다. 똑같이 '행복한 피겨스케이터' '행복한 리듬체조 선수'를 꿈꾼다. 온라인에서 날마다 전쟁처럼 이어지는 말다툼은 행복을 꿈꾸는 선수들에게 '독'이 된다. 최근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윤윤수 휠라 회장의 "김연아를 놓친 후 김연아에게 대항할 선수로 손연재를 키웠다"는 말 역시 객관적인 사실관계에서 틀린 것이 없다. 패션계, 광고계에서 김연아는 '스포츠 스타 마케팅'의 새 장을 열었다. '김연아 효과'를 실감했다. 김연아를 잡지 못한 광고, 후원주들은 김연아를 뒤따를 스포츠스타의 탄생을 고대했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김연아가 계속 나와준다면 더없이 고맙고 반가울 일이다.

열다섯의 손연재는 2009년 4월 김연아의 '페스타온아이스' 오프닝 쇼를 함께하며 꿈을 키웠다. '김연아 신화'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같하다. '존경하는 선수'라는 찬사를 빼놓지 않는다. 소속사의 악연은 과거지사, 어른들의 일이다. 소속사 문제로 인해 운동에만 전념하는 선수가 상처받는 것은 부당하다. 과거의 멍에를 전도양양한 어린 선수들이 짊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스포츠스타로서 각자 주어진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면 된다. 스마트한 그녀들은 이미 선수로서 자신을 갈고 닦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주변이다. 김연아 손연재의 공적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깎아내리는 소모적인 논쟁과 악플은 불필요하다. 종목도 다르고, 세대도, 환경도 다르다. 김연아와 손연재를 함께 멍들게 하는, 무의미한 일이다. 아름다운 두 선수는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소중한 자산이다. 불모지에서 외로이 고군분투하며, 새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보석같은 존재들이다. '세계 챔피언' 김연아의 길을 따르는 손연재의 성장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행복하게, 아름답게 공존해야 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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