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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올해 한반도를 덮친 사상 최장의 장마와 수차례의 태풍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호주 등의 대규모 산불과 가뭄 등 이제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우리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단지 기상이변뿐 아니라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의 대유행과 식량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큽니다. 강력한 친환경 정책을 약속한 조 바이든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국제사회에서도 기후위기가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는 시점을 맞아 우리 곁으로 다가온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7건의 기획 기사를 마련해 송고합니다.]
'배추 도매가 10㎏에 2만8천원, 사과 도매가 10㎏에 7만6천원…'
올여름 54일에 걸쳐 전국적으로 쏟아진 장마와 한반도를 강타한 5개 태풍에 우리 밥상도 직격탄을 맞았다.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올가을 한때 배추 한 포기의 소매가가 1만2천원을 기록하자 '배추가 아니라 금(金)추'라는 말마저 나왔다.
하지만 밥상 가격은 시작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기후가 한반도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들은 생갭다 더 빨리, 더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우울한 예언을 내놓았다.
가까운 미래에 태풍은 더 강해지고, 장마는 더 길어지고, 홍수는 더 잦아지고, 여름은 더 더워지고, 겨울은 더 추워지는 등 재앙과 같은 기후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여겨지던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이 돼 한반도를 덮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이상고온이나 이상저온과 같은 이상기후는 이젠 '이상(異常)' 기후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빈번해졌다.
국제환경연구소 김경웅 소장은 "기후변화 때문에 기상재해가 극심해지는 것"이라며 "인간 활동의 가장 근간이 되는 농업부터 시작해 사회의 모든 분야가 기후위기로 인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장 장마에 사과 생산 70% 줄기도…"사과가 한우만큼 비싸져"
충북 충주에 있는 김상섭(56) 씨 사과밭의 사과들은 색이 바랜 모습이었다. 가을철 사과밭의 낯익은 풍경인 빨갛고 탐스럽게 익은 사과가 아니었다. 살구색에 가까운 사과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고 풍성해야 할 사과나무 이파리는 숱이 적고 색이 거무튀튀했다. 이파리는 가볍게 당기는 것만으로도 툭툭 떨어져나왔다. 김 씨는 "원래는 그렇게 쉽게 이파리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 54일에 걸쳐 이어진 최장기 장마의 결과였다.
김씨는 지난 30년간 충주에 살며 사과 농사를 지었다. 같은 땅에서 그의 조부와 부친도 한평생 사과 농사를 했다. 하지만 김씨는 "앞으로도 과수원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밝혔다. 해마다 심해지는 기상이변 때문이다.
김씨는 "예전에는 20일 정도 오는 장마만 잘 지나가면 큰 부담 없이 수확을 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기상 예측도 안 되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두들겨 맞는 수밖에 없다. 54일씩 장마가 내리지를 않나, 장마가 그친 이후에도 계속 소나기가 퍼붓지를 않나…"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실제로 충주는 이번 장마 기간에 54일에 걸쳐 연평균 강수량의 65%에 달하는 약 814㎜의 비가 내렸다. 충주의 연평균 강수량은 1천239㎜이다.
여름철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고온다습한 환경이 이어지면 사과나무와 같은 과수에는 치명적이다. 이파리가 떨어져 나무의 영양분 저장이 부족해지면서 사과가 달게 익지 않는다. 높은 습도에 사과 탄저병이 번지면서 과육이 썩어나가기도 한다.
김씨는 "이번 장마 때문에 수확 자체가 감소한 것은 물론이고, 고온다습한 환경 탓에 병해충 피해를 봐 못 팔게 된 분량까지 합치면 사과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70%나 줄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과 가격이 폭등해 한우 못지않게 비싸졌는데, 사과 당도마저 떨어지니 소비자들이 찾겠느냐"며 "올해 농사는 망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에 따르면 10월 한때 서울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사과의 도매가격은 10㎏당 7만5천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 2만9천원보다 두 배 이상 오른 가격이다.
비슷한 시기 한우 가격은 600㎏ 수컷 기준 485만6천원이었다. 10㎏으로 환산하면 8만원 수준으로 사과 가격과 큰 차이가 없었다.
◇폐허처럼 변한 인삼밭…"내년부터 경작 포기하는 농가 늘어날 것"
이상기후에 큰 피해를 보기는 인삼 농가도 마찬가지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에서 1만 평 규모의 인삼 농사를 하는 반채순(68) 씨는 "40년간 여기서 인삼 농사를 지었는데 이런 이상기후는 처음"이라며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와 비교해 반 씨의 올해 수확량은 80% 수준으로 줄었다.
반 씨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충주시에서 인삼 농사를 하는 정하옥(62) 씨는 올해 수해 복구를 아예 포기했다. 정씨의 농장에는 차광막을 얹어두던 지주대만 남아있어 한때 이곳에서 인삼 농사를 지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건조해야 하는 인삼밭이지만 곳곳에 물웅덩이가 남아있었다. 토사에 밀려 부러진 채 땅에 파묻힌 말뚝도 많았다.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와 같은 모습이었다.
정씨는 "피해가 엄청나서 복구 자체를 포기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삼은 일조량이 중요하다. 밭이 물에 잠기면 인삼은 썩는다. 올해는 긴 장마로 인해 인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밭이 잠기는 침수 피해까지 봤다. 물에 잠겼던 인삼인 이른바 '물삼'은 정가의 30% 수준에 불과한 헐값에 처분해야 했다.
반씨는 "충주 엄정면 등 일부 산지에는 이번 장마 기간에 1천㎜에 달하는 비가 쏟아졌다"며 "농가들이 워낙 피해를 많이 봐서 당장 내년부터 이 지역 인삼 경적 면적이 10∼20%, 그다음 해에는 30% 정도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하우스 같은 시설로 옮길 수는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반씨는 "경제성이 없다. 쌀농사에 비유하면 5만원짜리 쌀 한 포대 수확하자고 20만원을 들이는 꼴"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농가 피해가 늘어나면 결국 소비자들에게 그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수확철인 여름부터 가을까지 이상기후로 농산물 생산량이 떨어지면 그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긴 장마로 인해 상추 품귀현상이 빚어지면서 지난 9월 상추 100g의 소매가는 한때 1천500원을 기록했다. 평년과 비교해 두 배 가까운 가격이다. 지난 10월 한때 배추는 10kg당 도매가가 약 2만4천700원, 무는 20kg에 약 2만8천600원에 팔렸다. 각각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39%, 10% 상승한 가격이다.
김백민 부경대 대기환경학과 교수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단순히 날씨가 뜨거워진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의 핵심은 변동성의 확대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날씨가 따뜻해진다고 해서 한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한 기후 현상의 빈도나 강도 모두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 자체는 점점 따뜻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가운데 폭우, 폭설, 가뭄, 폭염, 이상 한파 등 예측 불가의 기후재난이 빈번해진다는 의미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공기가 뜨거워지면 올해 장마와 같은 극심한 강우 현상이 잦아지게 된다. 차가운 공기보다 뜨거운 공기가 더 많은 습기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되면 2050년에는 일부 유역의 댐과 하천 제방이 4년에 1번 주기로 범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산강 등 일부 유역은 홍수량이 최대 50.4%까지 늘어난다. 전국 곳곳에서 홍수나 하천 범람이 빈번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 한파도 잦아진다. 온난화가 가속하면 북극 공기가 한반도까지 내려오는 것을 막는 제트기류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차가운 북극 공기가 한반도까지 내려와 이상 한파 현상을 일으킨다. 지난 2018년 한반도를 꽁꽁 얼린 이상 한파도 같은 원리로 발생했다.
겨울철에는 따뜻한 수증기를 머금은 북태평양 공기와 북극·시베리아의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충돌해 폭설이 내리는 일도 잦아진다.
윤기한 기상청 통보관은 "옛날에는 사흘은 춥고 나흘은 따뜻하다는 '삼한사온' 개념이 있었다면, 이제는 온난화로 인해 겨울철 평균 기온이 올라 비교적 온화한 가운데 갑자기 기온이 극적으로 내려가는 이상 한파 현상이 빈번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하듯 한반도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일일 최고기온과 최저기온, 최장 장마일수, 최다 태풍, 일부 지역 최장기간 대설 등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기상이변 기록 대부분이 최근 10년간 세워졌다.
유엔재난안전처(UNDRR)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는 이전보다 2배로 늘었다. 2000∼2019년에 7천348건의 자연재해가 발생했는데, 이는 1980∼1999년보다 2배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한반도가 이러한 기후변화의 흐름에서 유독 민감한 지역인 것도 문제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반도의 온난화는 지구온난화의 평균 속도와 비교해 1.5배∼2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 주변의 따뜻한 해류인 '쿠로시오 난류' 때문이다.
온난화의 진행 속도는 지역별로 편차가 있는데, 그 속도를 조절하는 주된 요소가 바로 바닷물의 온도다. 바닷물이 따뜻할수록 온난화는 빠르게 진행된다.
한반도 주변 수역은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 '웜풀(Warm Pool)'의 영향권에 속하는데,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웜풀은 점점 더 넓어지고 뜨거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수온이 높아지면 더 많고 뜨거운 수증기가 발생하고, 이 수증기가 대기를 가열하며 온실효과가 증폭되게 된다.
이는 지구 평균 온도가 2도 상승할 때 한반도는 그 이상으로 뜨거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반도를 찾는 태풍도 전례 없이 강해질 전망이다. 바다가 따뜻할수록 뜨거운 수증기를 에너지로 삼는 태풍이 더 강하게 발달하기 때문이다.
안순일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지구온난화와 태풍의 강도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면서 "태풍은 바닷물에서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해수면 온도가 증가할수록 태풍이 더 길고 강하게 지속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기후변화는 피부로 느껴지는 1도의 차이보다도 극한기상의 형태로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밝혔다.
653@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