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 탑텐과 지오지아 등으로 유명한 신성통상이 수십여 명의 직원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성통상의 직원들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인사팀장이 개인별로 전화를 돌리는데, 전화가 나에게 올지 동료에게 올지 모르는 긴장 속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떠나는 팀원을 배웅하면 줄 초상 분위기"라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입사 7개월 신입까지 자르다니…'직원과 고객이 행복한 회사' 맞는지 의문"
여기에 이번 조치 대상자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직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더욱 충격을 준다. 지난해 하반기 입사한 신입직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신성통상 직원들은 "일회용품 버리듯이 사람을 그냥 버린다", "이런 회사가 '직원과 고객이 행복한 회사'를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니, 양심이 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라" 라며 회사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신성통상 소속 직원들은 특히 이번 조치에 대한 일처리 방식이 매우 일방적이며 철저하게 회사 입장만을 고려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신성통상 직원은 블라인드 게재 글을 통해 "4월 6일과 7일 어딘가로 불려가 해고 통보를 받았으며 퇴사 날짜는 4월 30일까지였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신성통상 인사담당자는 "수출사업본부 전체 인원 220명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인원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을 요청한 것은 맞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주문 취소량이 급증했다. 취소한 바이어를 맡았던 팀원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하고 권고사직서에 서명을 마쳤다. 면담 과정에서 대상자 분들께는 '해외 공장도 문을 닫는 상황이라 더 이상 버텨낼 자본이 없다'고 설명 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조치 대상자 선정 기준은 주문이 취소된 바이어를 담당한 팀이다. 해당 팀에 속한 사원부터 임원 모두가 대상이 됐지만 전환 배치와 개인별 성향이 있어 예외 인원도 존재한다. 근무 기간은 짧게는 7개월, 길게는 임원급 인원까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신성통상은 이번 조치가 정리해고가 아닌 권고사직이라고 줄곧 강조하고 있다. 사전 해고회피노력 등을 의무적으로 강제한 정리해고가 아니기에, 이번 구조조정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사 및 노무관련 업계의 시각은 이와 다르다. 설령 권고사직이 맞다 하더라도 충분히 논란의 여지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사회 통념상 진위 아닌 의사표시나 사기, 강박에 의한 사직서를 제출했다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민원신고 접수를 진행하고 구제심사 등 절차를 밟아 법적 다툼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노무업계 관계자 역시 "근로기준법 제24조에 따르면 '해고당사자 선정 시 합리적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표기돼 있는데, 이번 조치 대상자 선정기준이 모호하거나 대부분이 신입사원이었다면 정당한 구조조정이라 보기 다소 힘들다"면서 "권고사직을 요청하는 형태 역시 대상자에게 고통을 주거나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행위로 이어지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으로 신고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한다. 추후 '직장갑질 119센터' 등을 통해 민원 접수나 문의를 진행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직원은 자르고 아들·사위는 입사, '애국마케팅'으로 공들여 쌓은 선한 이미지에 타격 우려
현재 신성통상 곳곳에는 오너가 일원 상당수가 재직 중이다. 염태순 회장의 동생 염권준 부회장은 신성통상의 주요 계열사를 진두지휘했으며, 장녀 염혜영씨는 물류관련 부서 부장급을, 차녀 염혜근씨는 탑텐 상품기획부에서 MD 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첫째 사위는 신성통상 계열사인 에이션패션 박희찬 대표로, 에이션패션은 패션브랜드인 폴햄을 소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염태순 회장의 외아들과 사위가 이번 구조조정 대상자 전원이 속한 수출사업부에 입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성통상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의 둘째 사위가 지난해 11월 수출사업부 구매본부이사로 입사했다. 이어 1월에는 아들인 염상원씨가 경영지원본부 과장으로 입사했다. 외동아들인 염상원씨는 신성통상 최대주주인 비상장사 가나안(지분 28.26%)의 최대주주(지분 82.43%)다. 사실상 염 씨가 신성통상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다.
1968년 니트 의류 전문 수출업체로 시작한 신성통상은 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 수출로 크게 성장했다. 그간 수출사업부의 공이 지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 매출액 5722억원 중 수출사업부는 2009억원, 내수인 패션사업부는 3616억원을 각각 기록한 바 있다.
따라서 신성통상의 '오늘'을 만든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데, 정작 오너가 일원은 '어려운 시기'에 입사해 근무를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회사 내·외부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이와 관련 신성통상 관계자는 "염 회장의 아들과 둘째 사위의 입사와 이번 구조조정을 연관해서 보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며 "완벽히 개별 사안이며, 시기적으로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하게 선을 그었다.
한편 염 회장은 그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줄곧 '애국마케팅'을 강조해 왔다. 특히 2012년 야심차게 내놓은 토종 SPA 브랜드 '탑텐'은 "유니클로가 한국 시장을 무섭게 파고드는 것을 보고 '이대론 안 되겠다'고 내놓은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소니를 꺾었듯, 탑텐으로 유니클로를 꺾는 게 꿈"이라고 말한 염 회장의 뜻에 따라 탑텐은 소비자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마케팅을 펼쳐 왔다.
이번 권고사직 이슈를 둘러싸고 많은 소비자들이 더 큰 실망을 나타내는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복절 티셔츠 등 애국마케팅 덕에 그간 탑텐이나 신성통상를 좋게 생각했는데, 실망이 크다", "밖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뭐하냐. 직원 귀한 줄 모르는 회사라니 실망스럽다"는 등의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자신을 이번 구조조정 대상자라고 밝힌 한 직원 역시 인터넷 커뮤니티에 "임원 연봉 삭감 등의 노력을 충분히 하고 나서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면 직원들도 이해했을 것이다. 상생하는 마음으로 직원 한명이라도 데리고 가려는 모습이 보였다면 이렇게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덧붙여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논란으로 신성통상이 그간 공들여 쌓아온 이미지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신성통상의 탑텐이나 지오지아, 올젠, 앤드지에 이어 관계사인 폴햄 등의 메인 타깃은 대부분 특정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밀레니얼과 Z세대다. 지난해 일본 브랜드 '유니클로' 불매 운동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던 신성통상이 이번 이슈로 인해 되려 국내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타깃'이 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염태순 대표가 인지하고 있냐는 질문에 신성통상은 "수출사업본부 경영진은 내부적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 어떤 식으로 해명을 한다 해도 이번 일로 퇴사를 하게 된 직원 분들께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제 와서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조민정 기자 mj.c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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