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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고발]배보다 큰 배꼽, 프린터 잉크값 거품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2-06-26 14:05


그래픽: 김변호기자 bhkim@sportschosun.com

배보다 큰 배꼽?

2000만원짜리 승용차가 있다. 국산 타이어 4개 교환 가격은 넉넉잡아 40만원 내외다. 차값을 1000만원으로 내린 뒤 타이어 값이 400만원, 무려 10배로 오른다면? 살 떨리고 타이어 아까워서 차 끌고나오기 힘들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프린터 시장에서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수년째 걷히지 않는 잉크값 거품 때문이다.

회사원 김모씨(43)는 최근 프린터 때문에 속이 끓었다. 중학생 아들의 과제물 출력을 위해 프린터를 체크했더니 잉크가 똑 떨어졌다. 대형마트에서 잉크 카트리지를 구입하려다 엄청난 가격에 숨이 턱 막혔다. 5만원 주고 구입했던 프린터의 잉크 카트리지 2개(검정, 컬러) 가격이 무려 4만8000원. 그렇다고 대용량도 아니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산 뒤 회사 후배로부터 리필 잉크, 재생 잉크, 무한 잉크 얘기를 들었다. 정품이 아니어서 찜찜했지만 싼 가격에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프린터 잉크 값의 고공행진이 도를 넘어 프린터 가격을 뛰어넘는 경우까지 생겼다. 실제로 캐논의 PIXMA MP287 잉크젯 프린터의 경우 온라인 마켓에서 정품잉크를 포함해 3만7530원(잉크 검정, 컬러 2개)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잉크 카트리지 가격은 같은 쇼핑몰에서 검정(2만270원)과 컬러(2만2720원)를 합쳐 4만2990원이다.

HP의 데스크젯 1050 잉크젯 프린터는 잉크 포함 가격은 4만3790원, 잉크값은 3만200원으로 프린터 가격의 73%에 달했다.

프린터기 제조사들의 '눈가리고 아웅' 업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잉크젯 프린터 시장점유율 1위인 HP는 9900원짜리 보급형 잉크 카트리지를 판매중이다. 높은 정품 잉크값에 억눌린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저렴한 잉크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잉크 어드밴티지' 프린터 제품은 가격이 10만원 내외로 비싸다. 프린터마다 장착할 수 있는 잉크 카트리지가 다르기 때문에 비싼 프린터에 싼 잉크 가격이 포함됐다고 봐야한다.

다수가 지배하는 시장은 '합리적 가격'을 지향한다. 소비자들은 비싼 정품 잉크 대신 다 쓴 잉크 카트리지에 주사기를 꼽고 잉크액을 주입한 리필 잉크, 아예 리필 잉크를 주입해 새로 카트리지를 제작하는 재생 잉크, 잉크 공급기를 부착한 무한리필 잉크를 적잖이 구입하고 있다. 이미 비정품 잉크는 거대 시장을 이루고 있다. 온라인 마켓에서는 수천가지의 비정품 잉크가 다양한 루트로 판매중이다.

HP, 캐논, 앱손 등 주요 프린터 제조사들은 이에 맞서 비정품 잉크의 비효율과 불량률 등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합리적 구매 의지를 꺾진 못하고 있다.


비정품 잉크는 애프터 서비스 불가, 떨어지는 인쇄품질, 아쉬운 내구성 등 분명 문제점이 있지만 탁월한 가격 경쟁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비정품잉크의 가격은 절반 이하 수준이다. 무한공급기를 사용하면 5분의 1 가격으로 인쇄할 수도 있다.

10여년전부터 생겨난 잉크 틈새시장은 비싼 정품 잉크 때문에 성장을 거듭했다. 컴퓨터와 프린터기의 보급률이 높아지고 최근에는 사진 인쇄가 가능한 포토 프린터까지 등장하면서 잉크 사용량은 늘었다. 인쇄량 개인차가 있겠지만 잉크 카트리지는 보통 4~5개월에 한번 교환해야 한다. 잉크를 아낀다고 프린터를 계속 방치하면 잉크 노즐이 막힐 수도 있다. 이를 감안하면 프린터 제조사의 주 수입원은 프린터가 아닌 잉크다. 이 와중에 쓸만한 프린터를 잉크값 때문에 통째로 교체하는 자원낭비까지 벌어진다.

HP관계자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했다. 경제적인 출력이 가능한 제품도 있다. 실제로 정품 잉크는 내구성과 출력량이 월등하다. 애프터서비스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가격경쟁력이 있다. 특히 리필 잉크와 무한잉크 등은 인체 무해여부를 검증받지 않았다. 가임기 여성은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밝혔다. 또 "잉크 카트리지는 엄청난 기술을 요하는 제품이다. R&D 투자도 무시못한다. HP는 1000개 이상의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단순 가격이 아닌 이런 여러가지 측면이 고려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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