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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3개월 전이었다. 한국 축구 역사의 한 단락이 바뀌었다.
파울루 벤투,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시대가 야속할 뿐이었다. 주민규는 두 차례나 K리그1 득점왕을 거머쥐었지만 단 한 번도 시험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들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는 색깔이 다른 스트라이커였다. 양지보다 음지를 지향하는 포스트플레이가 빛을 발했다. 활동반경도 넓었다. 중원까지 내려와 공간을 창출했다. 최전방은 원톱과 제로톱을 오가는 유형으로 변신했다.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에도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1990년 4월 13일생인 주민규는 34세 54일의 나이로 A매치 데뷔골을 작성했다. 다만 최고령 기록은 아니다. A매치 최고령 득점 기록은 '전설' 김용식 선생(39세274일)이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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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규는 2013년 2부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주 포지션도 미드필더였다가 프로에서 스트라이커로 보직을 변경했다. 상무 시절 1부를 경험했지만 원소속은 2부였다. 2019년 시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만년 2위' 울산 HD가 손을 내밀었다. 당시 울산은 김도훈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꿈꾸던 세상이 아니었다. 28경기에 출전해 5골-5도움에 그쳤다. 그는 이듬해 또 다시 2부행을 선택했다.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재출발해 1부 승격을 이뤘고, 득점왕에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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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규와 5년 만에 재회한 A대표팀 '임시 사령탑' 김도훈 감독은 7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어제 주민규가 득점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 전에 주민규와 최전방 공격수로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이미 이야기를 나눴다"며 "너무 내려오지 말고, 전방에서 기다리면 기회가 더 올 것이라고 봤는데 득점 장면을 돌아보면 헤딩으로 골을 넣었다. 축하받을 일이라 생각했다"고 격려했다.
그리고 "3도움을 올렸는데 난 사실 몰랐다. 득점력만 가진 게 아니라 팀플레이에 어울리는 지점이 있는데 그런 부분이 나와 나도 기분이 아주 좋았다"고 미소지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