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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 결승]역시! 염기훈 승부를 가른 키포인트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6-11-28 07:50


27일 오후 2시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2016 KEB하나은행 FA컵' 결승 1차전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가 열렸다.
FA컵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총 망라해 한국 축구의 왕중왕을 가리는 무대다. 2007년 이후 9년 만에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결승전이 펼쳐졌다. 후반 팀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킨 염기훈이 환호하고 있다.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6.11.27



'염기훈으로 시작해서 염기훈으로 끝났다.'

한때 유행했던 CF광고 카피가 있다. '남들이 예스(Yes)라고 할 때 노(No)라고 하겠다.'

통념을 깨는 발상의 전환을 강조한 내용이다. 이 카피에 딱 어울리는 장면이 축구 그라운드에서 등장했다.

2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2016년 KEB하나은행 FA컵 결승 1차전.

양팀이 1-1로 팽팽하게 맞서던 후반 13분. 모두가 크로스라 했는데 난데없는 슈팅이 나왔다. 3만여 관중은 탄성과 탄식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었다.

드라마같은 장면의 주연은 수원 주장 염기훈이었고, 조연은 권창훈이었다. 수원의 공격 전개 도중 필드 중앙에서 볼을 잡은 권창훈이 왼측면으로 파고드는 염기훈을 향해 침투패스를 했다.

수비 뒷공간으로 공을 잡은 염기훈은 페널티에어리어 모서리에서도 멀찍이 떨어진 지점에서 크로스를 올릴 듯한 자세를 취했다. 서울 수비진은 문전으로 대시하는 조나탄에게 쏠렸다.

틀에 박힌 교과서 축구라면 염기훈의 크로스 타이밍이 맞았다. 하지만 염기훈은 특유의 왼발로 골문 왼쪽 구석을 노리고 그대로 내질렀다.


허를 찌르는 기습 슈팅에 서울 골키퍼 유 현도 당황했다. 골기둥 왼쪽으로 치우쳐 있었지만 너무도 생각지도 못한 슈팅인 데다 코 앞에서 절묘하게 바운드된 공에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유럽 빅리그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명품 골이었다. 이 한방으로 승부가 갈렸다. 2대1로 1차전을 먼저 건진 수원은 FA 우승컵에 바짝 다가섰다.

염기훈은 "사실 그 볼이 잘못 맞았는데 들어갔다. 골이 들어간 것은 몰랐다"며 "'아...' 생각하고 있었는데, 골이 들어가서 놀랐다. 이런 골은 처음이다. 서울보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며 겸손해했다.

서울로서는 알고도 당한 셈이다. 서울은 지난 24일 열린 FA컵 결승 미디어데이에서 감독과 선수 모두 요주의 인물로 염기훈을 꼽았다.

올 시즌 15개의 어시스트로 2년 연속 도움왕에 오른 염기훈이다. 역대 '슈퍼매치'에서 총 7도움으로 슈퍼매치 최다 도움을 기록 중인 이 역시 염기훈이었다.

이런 염기훈을 어떻게 막느냐가 서울에게는 승부의 키포인트였다. 하지만 이날 1차전에서 만큼은 33세의 나이에도 측면을 마구 헤집고 다니는 염기훈에 역부족이었다.

수원은 후방 측면 윙어 홍 철의 오버래핑을 절제하는 대신 염기훈을 적극 활용했다. 염기훈에 대한 상대의 견제가 심할 것을 알면서도 '염기훈의 위력을 막을 테면 막아보라'는 듯 정공법을 택했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결승을 앞두고 "큰 경기 경험이 많고 노련미가 충만한 염기훈의 '기술'을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염기훈은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도 상대팀에겐 늘 경계대상이었다.

당연히 염기훈에 대한 대비책이 늘 등장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또 도움왕을 차지했다. 서 감독은 캡틴의 이런 관록을 굳게 믿었던 모양이다.

염기훈의 이날 진가는 그림같은 결승골에서만 나타나지 않았다. 전반 15분 조나탄의 선제골도 염기훈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평소 하던대로 왼쪽 코너킥 키커로 나선 염기훈은 골문 앞쪽에서 상대 수비를 달고 있던 이상호에게 정확하게 낮은 킥을 배달했다. 이상호의 다이빙 백헤딩에 이은 조나탄의 논스톱 슈팅도 절묘했지만 염기훈의 짜고 치는 듯한 크로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기선제압이었다. 수원 관계자는 "세트피스 때 문전 수비를 교란하기 위해 짧은 크로스에 이은 세컨드볼 슈팅 찬스 훈련을 항상 해왔다"고 전했다. 결국 염기훈의 코너킥은 짜고 친 게 맞았다.

반면 핵심 멤버 주세종의 부상에다 측면을 살리지 못한 서울은 염기훈의 존재가 더 뼈아팠다.

그동안 서울과의 슈퍼매치에서 '택배'전문 도우미로 주가를 높였던 염기훈이 이번 '슈퍼파이널'에서는 해결사로의 변신에 성공하면서 남은 2차전이 한층 더 흥미로워졌다.

염기훈은 미디어데이에서 "2010년 황선홍 감독님 부산에 계실 때 내가 결승골을 터트려 이겼다"며 황선홍 서울 감독을 향해 애교있는 '도발'을 했다. 일단 '도발' 1라운드는 성공했다. 오는 12월 3일 서울에서 열리는 결승 2차전이 더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원=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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